▲유인식 IBK기업은행 박사, 국무총리실 산하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유인식 IBK기업은행 박사, 국무총리실 산하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유인식
유인식: "호주 청정에너지금융공사(Clean Energy Finance Corporation)가 있습니다. 호주국회가 2012년 "청정에너지 금융공사법"에 따라 자본금 100억 호주달러 규모로 설립한 전담금융기관이지요. 영국 녹색투자은행(Green Investment Bank)도 있습니다.
영국 국회가 2013년 "Enterprise and Regulatory Reform Act" 입법으로 자본금 30억 파운드 규모로 설립한 기관입니다. 미국 뉴욕녹색은행(New York Green Bank)은 뉴욕 주 에너지연구개발청이 10억 달러 규모로 설립했고, DC주, 코네티컷 주, 몽고메리카운트 등도 녹색투자공사를 설립했습니다."
이원영: "명칭이 헷갈리는군요. 뱅크를 은행이 아닌 공사로 해석하기도 하나요?"
유인식: "네 그렇습니다. 이들 해외 금융기관은 공공자금을 바탕으로 운영됩니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공사'로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만일 자본의 출처가 '경기도민' 또는 '경기도 내 소재기업' 등 민간이고, 여신 외 수신업무를 포괄할 경우 '은행'이라 표현함이 타당합니다만, 일단 공사는 법인으로 하며,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을 적용하지 않기에 설립이 은행설립보다 용이합니다.
가령 경기도의 경우 시중은행이 매우 많고 타 지방은행의 영업까지 전면 허용되고 있어서, 경기도 기반의 지방은행 설립은 현실성이 낮습니다. 지방은행 설립시 인허가 조건 중 가장 큰 장벽은 대주주의 지분이 15%를 초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은행의 여신심사프로세스, 리스크관리절차 등은 국내외 금융법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관리됩니다. 시민이 투자하고, 사업심사 및 운영관리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지방은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는 인허가가 까다롭지요
미국은 은행 법인만 6천여 개에 달합니다. 공사 설립 후 일부 시민참여형(시민 투자, 관리)으로 운영하며, 대외적으로 상징적인 표현을 시민은행이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추후 검토가 필요할 듯 합니다."
이원영: "그렇다면 '녹색시민은행'으로 부를 수 있겠군요. 이름이 그럴싸하네요."
양준호: "녹색금융은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 에 없어서 비시장적(NON MARKET) 공공적 자원 배분이 필요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녹색금융은 정부 또는 시민사회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요.
녹색금융이 수익성과 건전성을 중시하는 대형 상업금융기관들에 의해 영위되면, 그들이 공급하는 금융지원은 자금수요자들의 사회혁신적 성과를 뒷받침해줄 수 있도록 하는 '인내심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으로 작용할 수 없습니다. 금융감독 당국의 BIS 비율 규제 때문이지요. 친환경, 생태, 에너지 전환 등 이른바 '사회혁신'에 대한 지향성과 역량을 가진 녹색 주체들에게 '인내심 있는 자본'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제1금융권을 통로로 하는 투융자를 피해야 합니다.
미국의 지역공공은행이나 독일의 지역저축은행(Sparkessen) 처럼 녹색금융의 상품개발, 투융자 결정, 투융자, 채권관리 등 그 전 과정에 시민이 관여, 경영,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프로세스의 공공화/시민화 또는 '금융에 대한 시민적 조정'이 중요하지요."
소액을 대출받은 서민의 상환율이 높다
이원영: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방글라데시에서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을 위주로 하는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은 상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신용이 좋다고 하는군요. 정부가 약간의 신경만 써도 활성화 될만 합니다. 그렇다면 참여주체의 지분은 어떤식으로 하는게 바람직한가요?"
양준호: "녹색금융 프로세스의 공공화/시민화를 위해서는 녹색금융의 주체에 대한 지자체/시민사회의 지분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의 에너지전환금융기관들을 주로 '시민은행'으로 불리는 조직 형태로, 시민이 50%, 지자체가 30%, 그리고 해당 지역 산업계가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직한 것은 지자체가 100% 출자해서 주체를 설립하는 겁니다. 가령 미국 노스다코다 지역공공은행의 경우, 지역의 친환경, 에너지전환, 여타 사회혁신적 사업에 투융자하는 것에 특화한, 지자체 100% 출자의 은행입니다. 그러나 이 '시민은행'은 설립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지역 주민의 대대적인 참여를 조례로 제도화하고 있지요."
이원영: "그러면 '시민은행'이 만들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가야 할까요?"
유인식: "원칙적으로 국책은행, 시중 민간은행 및 금융공공기관과의 차별화가 있는 분야여야 합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녹색사업 지분투자, 후순위여신, 보증, 보험 등 민간금융이 할 수 없는 높은 리스크를 책임져야 하지요. 리스크 차별화 없이는 설립 이유가 없습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한국녹색투자금융공사(가칭)'의 사업범위와 대동소이하되, 대상은 경기도 내로 한정하고, 사업규모는 소규모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에너지전환에 기여한 도쿄의 미래뱅크사업조합의 사례
양준호: "일본 도쿄의 녹색은행인 미래뱅크사업조합을 보면, 친환경적 실천에 관련된 투자를 하고 있는데, 펀드유치와 투자의 흐름이 재미있습니다. 1994년에 설립된 이 은행은 주로 지역의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등 탈원전 에너지전환 사업, 친환경상품 생산, 그리고 시민에 대한 녹색교육 사업에 파격적인 저금리(최대 2%)로 자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녹색금융에 적극적인 동경 시민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후 아주 낮은 금리로 배당을 지급하고 있지요. 시민의 주도적 자발적 참여를 유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뱅크사업조합이 녹색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대기업들과 같은 자본력과 기술력이 있는 사업 주체는 융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반면, 사회적경제조직과 같은 지역에 착근되어 활동하며 사회성과 공공성을 견지하는 주체들의 자금수요에 한해서 융자를 제공해왔던 점입니다. 즉 녹색 관련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NGO 중에서도 금융기관에 계량화된 재무정보나 담보를 제공할 수 없어 신용할당의 피해를 받고 지역 금융시장에서 배제되어 온 녹색 주체들에게 주로 투융자를 시행했다는 것이죠. 이게 중요합니다."
이원영: "일본에서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이 최근 십년간 급격히 신장된 것도 까닭이 있었군요."
양준호: "이 '시민은행'은 도쿄도 등 지자체와 연계해 리스크를 공유하고 있지요. 무담보 대출기한은 10년 이내로 설정했고, 융자 상한액은 300만 엔에서 900만 엔으로 설정하며, 장기회임기간을 갖는 설비자금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공적 신용보증을 통해 거액의 융자를 시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도쿄도는 이 은행의 융자에 대해 일정 비율까지 그 손실을 보전해주고 있으며, 해당 은행이 융자 결정을 하는 모든 과정에 금융전문가, 시민, 출자자 시민, 지역의 녹색운동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융자 프로세스 전반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녹색금융에 대한 국가(지자체)와 시민사회의 중층적 조정을 통해 그린뉴딜의 성격을 담보하고 있다고 평가할만 합니다."
이원영: "지역 시민으로부터 탄탄한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 내면서 이 은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출자가 이루어지도록 했군요."
양준호: "100년 전 미국의 노스다코타주는 주예산 200만달러를 자본금으로 해서 지역공공은행을 설립했는데, 은행경영 전반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대출심사 등과 같은 핵심 프로세스를 주민이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했습니다. 100년 동안 한결같이 지역 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저리융자에서부터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사업을 통해 지역의 에너지 전환을 꾀하는 협동조합들에 대한 무배당 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금융지원을 제공해왔지요.
중요한 것은, 자금 대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환경, 생태, 에너지 관련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대출심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이 은행을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은행으로 부릅니다.
이렇듯 공공성이 매우 강한 은행임에도, 100년을 운영하며 은행업 자체로도 시장에서 번영을 구가했는데, 2018년에는 자산 규모 70억달러로 성장했고 1억5900만달러 흑자를 냈었지요. 바로 이 은행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 덕분입니다."
이원영: "감탄할만한 사례군요! 유럽에도 모범사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선진국 사례들이 말해주는 '녹색시민은행'의 필요성
유인식: "영국의 정부소유기관으로서 환경정책 목표달성과 상업 이윤을 동시 추구하는 녹색투자은행(Green Investment Bank)이 유명한데요, '시민은행'과는 좀 다르지요. 네덜란드의 Green Funds Scheme은(GFS)는 정부 차원에서 녹색금융의 활성화를 추진하려고 세제혜택을 통해 환경프로젝트에 대한 자금공급이 원활하게 되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새로운 환경프로젝트가 환경에 즉각적이고 상당한 혜택을 가져온다는 것이 검증될 경우 정부가 녹색프로젝트로 지정하고 GFS의 낮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하거나 펀드의 경우 낮은 배당을 지급하는 혜택을 준다는 것입니다.
독일에는 '시민은행'과 유사한 사례가 많습니다. 지자체가 100% 출자한 지역공공은행(sparkassen)이 지역경제 안정화는 물론이고 지역 사회적 경제조직들의 녹색투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