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연연희자 권지혜 씨. T&S 프로젝트 라가능계 공연 모습 (사진제공 : 권지혜)
은평시민신문
- '풍물'이 우리 고유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풍물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해 주신다면?
"일반 대중들은 '사물놀이' 라는 말이 더 익숙하실 텐데 풍물 안에 사물놀이라는 장르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가, 무, 악이 모두 다 어우러지고 20~40명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함께 풍물을 칩니다. 사물놀이가 풍물 안에 구성들을 갖고 음악적으로 완성시켜놓은 장르라면, 풍물은 좀더 큰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굿이라고 하면 무속 굿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악기를 치는 것도 풍물굿이라고도 표현합니다."
- 공대를 졸업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과정으로 풍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음악 실기평가 시간에 처음 장구라는 것을 접했어요. 그냥 둥둥둥 꿍따꿍따 치는 게 재미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음악시간 말고 전통악기를 마주하지 못했다가, 고등학교 때 지역 연합풍물패가 공연하는 것을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부모님이 '대학교에 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하셔서 일단 대학은 취업률 1위라고 홍보하는 곳에 갔죠. 가서 거기에 풍물패 동아리가 있어서 입학식 하기도 전에 이미 가입 원서를 썼어요. 그렇게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동아리에 매진을 하였습니다.(웃음)
그 이후로 계속 하게 됐어요. 동아리에서 두 군데 지역에 가르침을 받으러 갔는데, 김포랑 고창이었어요. 두 지역을 오고 가며 인연이 생겼고, 풍물 매력에 더더욱 빠져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 풍물패는 흔히 남성의 얼굴로 대표될 때가 많죠. 이곳에서 '여성'이자 '청년'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제가 20대 중후반에 활동하면서 풍물을 아마추어 취미활동으로 하는 어떤 여성분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제가 판에서 상쇠(*농악패의 꽹과리를 치는 잽이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자로, 농악패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을 하는 잽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굉장히 놀랐다고 하셨어요. 여자가 상쇠를 하다니, 그것도 젊은 여자가. 자기가 배울 때는 선배들이 여자들은 장구 아니면 소고를 시키고 꽹과리는 만져보지 못하게 했는데. 그분이 제가 그 우두머리 자리에 있는 걸 보면서 '여자도 할 수 있는 거였는데' 하면서 뭉클했다고 하셨어요. 이전 시대에는 얼마나 그런 게 만연했는지 알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 때는 공대 내부의 풍물패였기 때문에, 풍물패에 남자 선배들이 갖고 있는 견고한 군대문화가 있었어요. '나는 여기서 인정을 받아야겠다', '살아남아야겠다' 생각하고 오기로 버텼죠. 남자 선배들이 뭐라고 하면 다 바락바락 싸우고, 무시당하지 않게 연습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사회패로 나오고 풍물을 전업으로 했을 때는 여성으로 차별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문화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여자라고 무시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들은 있었죠."
- 전통예술과 문화운동을 접목해 활동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살판'에서 활동했는데요. 말씀하신 '어쩔 수 없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차별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공동체라도 내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그렇죠. 차별이 없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활동하는 여자선배들이 남자선배들 만큼 많지 않아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 판에 복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복귀를 해도 어떤 경제적인 가정의 지원이 있지 않은 이상 풍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남아서 하는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을 해서 경제적으로 지지를 받는 분들이거나, 아니면 부부가 같이하거나. 셋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 풍물을 배우고 공연자로 활동하던 때와는 달리, 직접적인 실무를 하고 판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니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남자더라고요. 이건 문제가 있다, 더 비집고 들어가서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계속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것도 이대로 굳어지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