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던 회사 분위기는 정겨웠다.
pixabay
20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가족 같던 회사 분위기는 정겨웠다. 사장님은 초복, 중복, 말복마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삼계탕이든 보신탕이든 몸보신을 시켜주었다. 그중에 비건을 추구하는 동료가 있어서 다른 식당에서 파는 메뉴를 배달시켜주셨다.
가끔 간부와 팀장, 팀원끼리 소통하기를 바란다며 전산팀, 편집팀, 영업팀 팀끼리 나눠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셨다. 그때 회식은 술을 권유하거나 저녁 시간을 침범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러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동료들이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나누기도 했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연인이 없는 직원들이 모여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낼 정도로 우리는 참 가까웠다.
그중에 생각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는 추억은 야유회다. 일 년에 한 번 꼭 1박 2일로 야유회를 갔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배드민턴도 치고, 퀴즈를 맞추며 건전하게 놀았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보다 더 웃긴 과장님의 재능이 있었다. 다른 해에는 비슷한 업종의 회사와 '쪼인(join, 함께)'해 야유회를 갔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도 타고, 짝피구도 하고, 보물찾기 하면서 상금도 탔다.
대하를 가져오라고 하니까 넓직한 고무대야를 가져온 동료에게 얼마나 낄낄댔는지. 밤늦게 술 마시다 취해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꼭 생겨나고, 옆에 있는 친한 동료는 괜히 울고 있고. 다음날 머쓱하고 민망한 얼굴을 봐도 아무렇지 않게 함께했던 동료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아, 그리운 시절이여. 내 인생에 황금기 같았던 시절은 아마도 이십 대 직장 생활을 하던 때일 것이다. 일에 대한 성취도 있었지만,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실력이 부족하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이고자 30분 일찍 출근해서 필요한 업무를 배웠고, 늦게 퇴근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업무와 관련한 학원을 다니면서 보충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인정을 받기보다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때 우리는 일이 주는 보람도 나누었고, 스트레스도 나누었다. 같이 뛴다는 동료의식이 있었다. 힘들면 기다려주고, 지치면 끌어주고,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는 협업이었다. 일하는 게 서툴고, 돈 버는 게 어렵다는 걸 아는 시기에 만나서 그런지 각별한 전우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에게 선배였고 상담가였으며 동료였기에 야근으로 고단했을지언정 외롭지 않았다.
분명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늦도록 일하는 치열한 사회생활이었을 텐데, 지금은 쉽게 갖지 못하는 기회여서 그런지 동화 같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걸까. 대학 졸업하고 막 회사에 취직해서 세상 물정 모르던 시기, 사람들을 어찌 대할지 몰라서 막막해서 집에서 울던 날도, 또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주말에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엉엉 울던 시간도 있었지만 견디는 동안 여물어가던 시기라서 그런지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