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너희들 편이다> 표지
우리문학사
원고도 없이 출판계약을 하다
우리는 교보문고 내 찻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차담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그 자리에서 대뜸 자기가 그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 날 퇴근길에 응암동 그의 출판사에서 원고도 없이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그날 밤부터 원고 집필에 들어가 석 달 만에 800여 매의 원고를 탈고한 뒤 출판사로 넘겼다. 출판사에서 본문 뒤에 발문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기에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인사를 나눈 바 있는 이오덕 선생님에게 부탁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거절치 않을 뿐 아니라 내 원고를 아주 꼼꼼히 읽고, 여러 부분을 쉬운 우리말로 일일이 퇴고해 주시면서 따로 쓴 발문도 건넸다. 주요 고친 낱말이다.
식탁→ 밥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이따금씩→ 이따금, 교육이란 미명으로→ 교육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입장→처지, 주방→부엌, 야채→채소. 남새, 획일적→ 판에 박은 듯이, 국민․민초→ 백성, 먹거리→ 먹을거리.…
선생이 일러주신 대로 원고를 고쳐 놓고 보니 글이 훨씬 깨끔해졌다. 나는 해방 후 세대로 우리말과 글을 50여 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두고서 별 다른 생각 없이 한자말이나 외래어, 일본말투, 서양 말법을 예사로 써 왔다. 특히 '그녀'에 대한 선생의 보탬 말씀을 듣고는 남녀 평등에 대한 높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왜 하필 여자를 가리킬 때만 '그녀'라고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남자를 가리킬 때면 '그남'이라고 해야 되겠지요. 남녀 없이 '그'로 쓰면 됩니다."
마무리 교정지를 출판사에 넘긴 며칠 뒤 우리문학사 편집장(편집인 권향미 씨)이 학교로 전화를 했다. 책 표지에 내 사진을 크게 넣고 싶으니 게재 허락과 사진을 보내달라는 청이었다. 나는 거듭 사양했으나 그는 그래야 책 판매와 홍보에 좋겠다고 거듭 간청했다.
며칠 고민한 뒤 그 청을 허락하고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기뻐할 부모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분 다 내 곁을 떠나셨다.
1997년 9월 25일에 발간한 <아버지는 너희들 편이다>란 그 책은 손아귀에 들어가는 아주 아담하고 자그마한, 깜찍하게 만든 예쁜 책이었다. 우리문학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으로 주요 일간지에도 책 광고를 했다.
그런 탓인지 여러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많았다. 그때마다 각 방송국에 출연하여 책 홍보에 힘을 보탰다. 아무튼 책이 꽤 많이 팔렸다. 출판사에서 매쇄마다 저자에게 주는 증정본은 지난날 신세를 끼친 분에게 사례로 우송했다.
그러자 10여 전 학부모였던 이영기 변호사는 당신 모교 학생들에게 보낸다면서 한꺼번에 책을 300부나 사줬다. 그해 여름방학을 앞두고 그분은 학교로 전화를 했다. 전 서울 영등포지청장(현, 서울 남부지검장)으로 1979년 유신 말기 고종아우가 유신철폐 시국사범으로 영등포경찰서에 유치됐을 때 고맙게도 면회를 주선해 주셨던 분이다.
그날 전화 용건은 주말에 당신 서초동 사무실에 들러 달라고 한 것이었다. 약속한 날 사무실에 들르자 낯선 두 분을 소개했다. 한 분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씨라고 한 바, 고성 이씨 족친(집안)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분은 얼마 전에 중국에서 영구 귀국한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金東三) 선생의 손자 김중생 씨라고 했다.
두 분은 모두 경북 안동 출신이었다. 이 변호사는 당신이 일체 비용을 후원할 테니 나에게 두 분의 안내를 받으며 중국대륙 항일유적지를 둘러보라고 했다. 그런 뒤 젊은 세대들이 읽을 수 있는 쉽게 쓴 <항일유적답사기> 집필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모름지기 견문이 많아야 하고, 나라와 겨레에 대한 바른 이해와 민족애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내가 그 뜻을 고맙게 받아들이자 그 자리에서 중국대륙 항일유적지 답사단이 꾸려졌다. 그날 처음 만난 김중생 선생은 1933년에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나 한때 조선의용군으로 6.25전쟁에 참전(인민군)했고, 동북 헤이룽장 성 자무쓰(佳木斯)사범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아성현중학교 역사교사로 살아온 항일운동에 해박한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