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정하는 조경순고등군법회의 재판정에서 퇴정하는 조경순
동아일보(1949. 10. 1) 캡처
조경순의 부친이 '목사'가 분명하다면 그는 누구일까? 당시 활동하던 제주지역 목사 중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은 '조남수 목사'(1914-1988)가 거의 유일하다. 조남수 목사는 4.3 당시 입산한 무장대들에게 선무공작 활동을 펼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져냈고 반공의식이 강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 목사는 10세 때인 1925년 일본으로 건너오라는 부친의 편지를 받고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 거기서 고등소학교부터 상업학교에 이르기까지 공부하다가 귀국하였다. 하지만 그의 가계도에는 '조경순'이란 딸 이름이 올라 있지 않다. 다만 조 목사의 부친 조**(1890-1962)의 후처(강**, 1917)에게 3녀가 있었다고 나온다. 그들 중 한 명이 조경순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 해도 조경순이 1930년생이라면 나이가 잘 맞지 않는다.
제주의 향토사학자 김인주 목사는 "조경순은 조남수 목사의 딸일 가능성 90%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조경순의 나이를 비춰보면 조남수 목사 부친의 후처가 낳은 딸이 아니라 조남수 목사의 딸이어야 맞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경순의 호적상 주소(제주시 조천면 1618)는 조남수 목사의 큰 딸이 자신의 부친이 살던 곳이라 지목한 적 있는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지번과 일치한다고 하였다. 김인주 목사는 당시 신문에 보도된 '조천'이란 명칭은 '조수'(造水)의 물 수(水)자를 기자가 오독해 잘못 쓴 걸로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더 면밀히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조경순이란 인물은 매우 흥미롭다. 4.3항쟁이 발생한 제주 출신 중에 여순항쟁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고, 기독교 신자로서 애정과 이념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애인을 택해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카의 증언대로 조경순은 월북해서 지금도 살아 있을까?
※ 참고자료
제주노회, <제주기독교 100년사>(2016)
주철희, <불량국민들>(북랩, 2013)
경향신문, "이용운과 조경순(김지회의 처) 등 9명 총살 언도"(1949. 10. 2)
동광신문 "반도수괴 김지회 애인 조경순은 이러한 자다" (1948. 11. 23).
동아일보, "유진오 등에 총살 구형" (1949. 10. 1)
조선일보, "애정과 사상" (1949. 5. 1)
조성봉, '그녀, 조경순'(http://t2m.kr/YLV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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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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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빨치산 조경순,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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