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긱이코노미의 민낯과 무너지는 플랫폼 노동자, 책표지
롤러코스터
아래 내용은 래브넬이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긱이코노미의 민낯과 무너지는 플랫폼 노동자, 2020, 롤러코스터)에서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경제 형태인 긱경제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무리 앱이 만드는 현대적 요소로 포장한다고 해도 긱경제는 초기 산업사회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당시에는 노동자가 장시간을 일하고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 안전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길도 거의 없었다." (21-22쪽)
래브넬은 책에서 '공유경제'를 "이윤을 위해 자산이나 서비스를 빌려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앱 기반 기술의 집합체"라고 정의했다. 긱경제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로 얘기하면 '플랫폼 노동'이라고 더 잘 알려진,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등이 매우 유사한 운영 체계와 원리를 보인다.
래브넬은 미국의 대표적인 긱경제 기업인 에어비앤비, 우버, 태스크래빗, 키친서핑 노동자 약 80명을 면담했다. 책은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공유경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참여 계기는 무엇인지를 자세히 풀어냈다.
긱경제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무슨 일을 할지를 노동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자유롭게 하세요. 요금은 직접 매기시고요." 가사 대행업체인 태스크래빗이 일할 사람을 끌어들이는 문구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선택권은 수시로 제약을 받는다. 오랫동안 디지털 플랫폼을 떠나 있으면 이용 정지를 당하거나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컴퓨터가 관리하는 일정을 따라야 한다.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이 여러 대의 핸드폰을 켜놓고 있고, 정해진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이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채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기업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고용한 임시 인력을 앱과 연결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을 생성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292쪽)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은 증발하죠." 책에서 인용한 한 CEO의 말은 매일 매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긱경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곳에 언제든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긱경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언제든지 아무런 법적·사회적 보호장치 없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이면의 또다른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긱경제는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쌓아온 노사 간의 기초적인 계약마저 쓸모없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을 개인화하고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긱경제를 통해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기업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경제적 위험이 기업과 정부로부터 평범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현상"(293쪽)이 긱경제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공유경제 기업은 노동자에게 자율성과 사업의 발판을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사실은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노동자가 검색 결과에 나오고 작업을 배정받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만든다. 신뢰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는 평가로 점철된 온라인 원형 감옥에 갇혀 신원조회를 받고, 평점과 후기를 받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당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제공받지 못하고,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332쪽)
우버 택시 기사가 손님에게 폭행을 당할 때나, 태스크래빗 노동자가 의뢰인으로부터 턱없이 적은 임금에 비해 부당하게 많고 더러운 일을 요구받을 때도 기업은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노동자가 회사의 책임을 묻는 경우 복잡한 절차와 부당하게 체결된 계약을 근거로 시간을 끌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오히려 의뢰인이 매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부당한 평가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데는 신속하게 움직인다.
배달 라이더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박정훈이 최근 펴낸 책 제목이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빨간소금)이다. 공유경제 기업, 플랫폼 기업, 앱 기반 기업, 긱경제 기업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 부르던 이들 기업의 모습을 매우 정확하게 꼬집은 제목이다.
긱경제 기업은 중개만 할 뿐 생산수단을 보유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인색하다. 그야말로 배달 기업이 실제 배달을 담당하지는 않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감독과 업무 지시, 통제는 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이나 안전에 대한 책임에는 인색하다.
"공유경제 기업이 성장하고 급증하면서 수세대에 걸쳐 구축된 경제적 이득과 노동자 보호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초기 산업사회로, 다시 말해 노동자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가 기업과 엘리트층의 지배를 받으며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시대로 돌아갔다."(332-333쪽)
돈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사회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