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전남운동협의회와 관련한 오홍탁 기사
박만순
1934년 9월 10일자 <동아일보>에는 '주모자 김홍배와 순사 오홍탁'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기사는 오홍탁이 현직 순사면서 적색농민조합의 핵심 인물로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했다.
오홍탁은 혁명적 농민운동에 참여해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에 독서회를 조직하고 소작쟁의 운동을 지도했다. 그는 비밀을 탐지하고 동지들과 연락할 목적으로 1933년에 순사시험에 응시, 12월 강진경찰서로 발령났다. 그는 강진과 해남을 오가며 암암리에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했으며 적색농민조합 건설 준비위원회 산이면 책임자로 전남운동협의회의 핵심 인물이었다.(해남신문사, 『이데올르기에 갇힌 해남의 근·현대사』)
경찰서에서는 모범경관으로 칭찬 받고, 마을에선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칭송이 자자했던 오홍탁이 몸담은 '전남운동협의회'는 어떤 조직인가?
1934년 2월 27일 전남경찰부 고등과의 지휘로 각 군의 경찰서가 총출동했다. 해남 북평면을 비롯 완도, 장흥, 강진, 영암, 목포, 보성, 순천, 여수, 진도 등지로 긴급 수사력이 발동됐다. 해남군을 비롯 9개 군에서 검거선풍이 휘몰아친 이 사건은 558명이 검거되고 57명이 치안유지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송치됐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다름 아닌 해남군 북평면 출신의 김홍배와 완도 황동윤이 주동이 되어 만든 '전남운동협의회'라는 조직 사건이었다. 전남운동협의회는 '농민 조직화'와 '대중투쟁의 전개'라는 목표 아래 영농회사의 토지겸병 반대, 소작료 인하 요구, 면화·해태 등의 가격 인상 요구, 호세(戶稅) 및 기타 공과세의 인하 요구, 간상과 고리대금업자의 배격 등을 요구했다.
농민운동과 동시에 민족해방투쟁이었는데 이들은 완도군 고금도 소작쟁의를 비롯, 해남군 송지면 소작쟁의와 영암군 야경단 조직 등의 활동을 했다. 1933년 출범한 전남운동협의회는 신간회 사건 이래 최대의 조직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의 오임탁(당시 29세)과 오홍탁(당시 24세)이 구속됐다. 산이면 상공리는 동복 오씨 집성촌으로 오임탁과 오홍탁은 마을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역사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한 오임탁과 오홍탁은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농민대중의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한 이들이 후일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갈매기섬에서 학살당하게 된다.
3년간 입도 벙끗 안하고 감옥 생활
같은 마을에는 오장록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해방 직전 감옥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었다.
"네 놈 배후가 누구야!" 일본 고등계 형사의 취조가 이어졌다. "어버버." "이 놈의 새끼 제대로 얘기 못해" 하며 형사는 오장록에게 몽둥이 찜질을 해댔다. 하지만 언어 장애인인 그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빠가야로(바보)"라며 형사는 몽둥이를 내던졌다.
오장록은 감옥 안에서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형무소 간수와 죄수들 모두 그가 말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장록은 감옥 생활 3년 동안 언어 장애인 생활을 했다.
그랬던 그가 감옥에서 나오고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자 말이 터졌다.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당사자는 무덤덤했다. 그는 언어 장애인 흉내를 내어 일제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난 것이다.
오장록은 해방 후 해남군 농민위원장을 맡게 된다. 해남은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천진문, 민병승)을 잠시 거쳐 인민위원회(위원장 김정수)가 지방행정을 통치하게 되었다. 주민 직선으로 주동혁이 경찰서장에 선출되고, 천진문이 뒤를 이었다. 인민위원회와 쌍두마차 격으로 지방행정을 이끈 조직은 농민위원회였다. 해남 농민위원회는 회원이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농민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았다.
1946년 11월 11일 해남군 전역에서 추수봉기가 일어났다. 산이면에서는 오홍탁, 오임탁이 주도하였고, 오장록은 해남군 전체의 봉기를 진두지휘했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피하던 오장록은 1948년 4월 해남군 황산면 부곡리에서 검거되었다.
그는 장흥 검찰로 송치 도중 차 속에서까지 경찰을 교화시키려 했다고 한다. 장흥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그는 철창을 잘라 탈옥에 성공했으나 화순에서 검거되어 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해남신문사, 앞의 책)
"오빠 왜 죽였냐?" 항의하는 여성을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