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보호구역 내 안흥진성태안 안흥진성이 국가사적 제560호로 지정됐다. 사진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 내 안흥성 모습으로. 형태가 온전히 보존돼 있다.
태안군 제공
태안 안흥진성은 그동안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서해안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조운로의 주요 거점을 담당하는 장소이자 보장처인 한양과 강화도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축성됐다는 점이 입증됐다.
이같은 태안 안흥진성의 가치는 지난 7월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열린 '안흥진성 사적 지정을 위한 2차 학술세미나'에서 기조강연에 나선 심정보 한밭대학교 교수의 발언에서도 거론됐다.
당시 심 교수는 안흥진성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안흥진성의 성벽은 체성 상부의 여장까지 잔존하고 있어 축조 당시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우리나라 수군진성으로서는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또한, 조사과정에서 확인한 체성의 각자성석은 축성군의 동원지역과 공정상의 축성구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심 교수는 "안흥진성의 성벽은 우리나라 수군진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장이 석재 및 전(塼)으로 축조돼 있고, 총안이 근총안 만을 설계해 시설한 최초의 성곽으로 주목되고 있다"면서 "안흥진성은 수군진성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축성사적으로도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관방유적으로서의 보존, 관리상 국가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할 문화재적 가치를 비롯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심 교수는 또한 태안 안흥진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안흥진성의 역할은 서해로 거슬러 올라오는 적을 물리칠 해상방어를 비롯해 호란 이후 보장처로 부각된 강도(江都)의 배후 수군진 역할, 그리고 안흥량 일대의 험조처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안전호송이라고 하겠다"며 "최근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해문화재과에서 공개한 안흥진 수군 군적부는 조운선의 안전호송을 담당하는 분군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안흥진성의 가치를 더욱 높여줄 것으로 판단된다"는 말로 기조강연을 마무리했다.
심 교수의 평가처럼 태안 안흥진성은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돼 1866년(고종 3년)에는 안흥방어영(종2품 방어사 군영)으로 승격됐다. 또한, 18세기 후반에는 충청수영 행영(行營,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태안 안흥진성은 <조선왕조실록>, <대동지지>, <비변사등록> 등 문헌기록을 통해 축성의 연도·배경·완공시기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해안의 관방유적(군사목적의 시설 유적)으로, 전국의 통제영·방어영·수영·수군진성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해 수군진성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다음은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전국의 현지답사를 토대로 편찬한 지리서인 <대동지지>에 나타난 안흥진성에 대한 기록이다.
안흥진은 본래 안흥량의 수자리 하는 곳이었는데, 효종 4년(1653년)에 화정도(현재의 신진도)로 옮겨 설치하고, 효종 6년에 김석견의 건의로 안흥진성을 새로 축조하였는데, 둘레는 3621척이며, 현종 10년(1669년)에 본진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내용으로 볼 때 화정도의 신진에 축성하기 전에 이미 구진인 본진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성(鎭城)의 둘레 3621척은 문맥상으로 볼 때 안흥 신진의 성곽 둘레가 틀림없다고 하겠으며, 당시의 성곽 둘레가 '대동지지'에 수록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 축조한 안흥 신진의 성곽 둘레 3621척을 포백척(준수)의 기준치 46.73㎝를 적용하여 환산하면 1692m가 된다.
태안군과 근흥면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낸 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