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정년이>의 한 장면. 처음 국극단에 입단하는 정년의 마음을 보여주는 대목.
웹툰 정년이
하지만 국극배우 지망생인 정년이가 당장에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 닥치기도 한다. 연습복은 물론이고, 공연에서 쓰는 분장용 화장품, 붓 등도 개인의 돈으로 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구생들에게 '야참비'가 지급되긴 하지만, 그 돈으로는 화장붓 하나도 사지 못했다.
정년이는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노래를 불렀다.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다방 아르바이트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다방에서 아르바이트 한다는 사실이 단장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단장은 "극단의 예인"이 다방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에 반발한다. 단장은 예인이 되기 위해 국극단에 온 지망생들이 현재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지만, 실상은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노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예술노동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취가 담보되기 이전에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망생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보상이 없음을 감내해야만 한다. 단원들에게 야참비 외에 다른 보상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단장은 "극단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는데 무엇이 아쉬워! 출연료라도 줘라, 그 말이냐?"(34화)라고 되묻는다. 주연 배우가 되어 무대에서 빛나고 싶다는 꿈을 위해, 대부분의 지망생들은 현재의 보상 없음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노동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예술노동은 재능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인가?
창작극 <자명고> 에피소드는 이 웹툰의 주된 축 중에 하나이다. 이 극을 쓴 극작가는 극의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서 뽑았다. 오디션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균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기회는 균등하지 않다. 다만, 균등하게 보일 뿐이다. 매란국극단의 오디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디션을 통해 실제로 뽑힌 배역들은 기존의 매란 국극단 주연의 라인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정년이의 짝선배이자, 정년이에게 조언을 해주며 정년이의 성장을 돕는 인물인 백도앵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앵은 국극단의 주연이 고정되는 문제에 대해서 "재능은 본래 불평등한 법이야. 주연은 재능 있는 사람의 것이고."(31화)라고 말하면서, 주연이 고정되는 문제가 정당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 웹툰의 주인공인 정년이 역시 애초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극단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년이의 어머니는 '하늘이 울린 소리꾼'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채공선이고, 정년이는 어머니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 재능 때문에 정년이는 국극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정년이는 애초부터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국극단 안에서도 나름 입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매란국극단 안에는 애초부터 재능이 있는 이보다, 재능이 없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국극단에 들어온 이들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