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씨의 시간표현숙씨는 도전적 행동이 심해진 은아씨에게 어느 요일에 누가 데리려 가는지 매일 설명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은아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신나리
27일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자신의 집에서 만난 현숙씨는 "25년간 은아를 키우며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현숙씨가 말한 '처음 본 은아씨의 모습'은 지난 2월 코로나19로 은아씨가 다니던 복지관이 문을 닫은 후 드러난 도전적인 행동을 뜻한다.
엊그제만 해도 은아씨는 '쉬가 마렵다'면서 길에서 옷을 벗고 소변을 봤다. 주유소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생긴 일이었다. 코로나 전,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말했던 은아씨는 어느새 의사 표현을 하기보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상관없이 자기 욕구대로만 행동하려 했다.
은아씨가 변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던 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은 은아씨를 더 나빠지지 않게 잡아주었고, 은아씨가 스스로를 자제할 힘을 키워줬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복지관이 문을 닫았다. 은아씨가 하나씩 배우던 생활지능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엄마 현숙씨는 "발달장애로 지능은 세 살도 안 되지만, 생활지능은 달랐다, 은아는 혼자 속옷을 챙기고, 양말을 신고 옷을 입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옷이든 신발이든 제대로 입고 신지 못한다"라고 은아씨의 상태를 설명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조정했다. 전국 유흥주점·뷔페·대형학원·노래방·피트니스 등 고위험시설 10종 영업이 가능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비수도권에서는 실내 50명 이상, 실외 100명 이상 집합이나 모임·행사를 허용하고, 수도권에선 자제를 권고했다. 지역 복지관의 문이 열린 것도 이즈음이다.
사실 은아씨는 운이 좋게 조금 더 빨리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난 8월부터 해당 복지관이 중증 발달장애인을 1대 1로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지관에 다닌 지 2개월이 됐지만, 아직 은아씨에게는 집에서 갇혀 지낸 6개월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자폐 증상은 심해졌고 욕구불만, 퇴행적·도전적 행동은 늘어났다.
이종성 국민의 힘 의원실에 따르면 9월 8일 기준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시설 1033곳 가운데 80%에 달하는 822곳이 휴관했다. 이후 코로나가 1단계로 하향조정되자 하나둘씩 복지관이 문을 열었다. 다만, 코로나를 염려해 축소 운영하거나 개관을 미룬 곳도 있었다. 복지관의 사정도 모를 바 아니었다. 방역과 감염 모두를 신경써야 하고, 살피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복지관 외에 대안이 없는 이들이다. 주로 지역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등을 통해 지원을 받았는데, 한순간에 센터가 문을 닫았다. 나머지는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의 퇴화와 더불어 가족들의 우울증세도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지난 6월,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적한 농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심한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었다. 지난 3월에도 제주 서귀포에서 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현숙씨는 "광주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이가 소리를 너무 질러 아파트 주민의 민원에 시골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도 민원이 들어왔다더라"면서 "정말 아무 데도 오갈 곳이 없다는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다, 나는 그 맘을 안다"라고 말했다.
문 닫은 복지관, 심해지는 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