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포장 논길에 벼 알곡을 말리고 있다. 농기구 고무래가 인상적이다.
전갑남
알곡을 펴널 때 쓰이는 농기구 하나가 할아버지 손에 들려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당그래이다.
"이거, 당그래라 하지 않나요?"
"당그래? 오랫만에 들어보네. 고향이 여기 아닌가 봐?"
"저, 전라도에서 자랐어요."
"그래. 당그래라 부르기도 했지."
내 어렸을 적에는 지금 할아버지가 들고 계신 기구를 당그래라 불렀다. 탈곡한 곡식을 펴서 말릴 때나 부뚜막에 쌓인 재를 퍼낼 때 이걸 사용했다. 고무래가 표준말이다.
할아버지 고무래질 손놀림이 엄청 빠르시다. 고무래가 지난 자리는 알곡들이 골이 파이며 고르게 펴진다. 움직일 때마다 고르르 고르르 소리가 들린다. 펴지며 뒤집어지며 알곡들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이렇게 고무래질을 시간 간격을 두어 여러 번 하면 고르게 마를 것이다.
할아버지와 말동무를 이어간다.
"할아버지께서는 추수 다 끝내셨어요?"
"내일이면 끝날 거야!"
"올 소출도 많이 나왔지요?"
"예년만 못하네!"
"들길에선 괜찮아 보이던데요."
"털어놓고 보니까 시원찮아! 벼도 그렇고, 쌀도 좀 덜 나올 것 같아."
"풍작이어야 하는데..."
"긴 장마에다 태풍까지 두어 차례 지났는데, 뭘!"
올 가을 소출이 적은 것은 지난 여름 장마가 길어 아무래도 일조량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거둘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태풍에 잘 견디고, 가을볕에 똑똑 여물어 준 것, 고맙지!"
평생 농사를 지으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다. 농부는 정성을 다해서 가꾸고, 논밭에서 나오는 곡식의 양은 하늘이 결정해주는 거라고! 농사에도 심오한 철학이 있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수롯가 논길에는 억새와 갈대가 하늘하늘 춤을 춘다. 거친 느낌의 탐스런 갈대, 보드라운 은빛 억새 물결이 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