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진헤 '창원시 아이세상 장난감도서관' 뜰에 있는 10월유신 기념탑.
윤성효
"어떤 형태로든 역사적 표시가 있어야"
이런 가운데 지역 안팎에서는 창원에 있는 '10월유신 기녑탑'과 '유신동산' 표지석, '5․16군사혁명 기념비'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원오 경남진보연합 대표는 "놀랍다. 창원에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조형물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3개나 있다는 사실에 아연 실색할 따름"이라며 "더군다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찬양 위주의 조형물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시민운동단체도 많고,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도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여러 단체와 논의를 거쳐 박정희 찬양 조형물의 철거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5.16군사혁명 기념비' 문제는 1999년 당시 한바탕 논란을 빚다가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23일 전화통화에서 '기념비 철거 운동'이 이어지지 못했던 이유를 밝혔다. 다음은 김 고문과 나눈 대화다.
- 유신 잔재 청산운동을 왜 계속하지 않았는지?
"열린사회희망연대가 유신잔재 청산운동을 할 때(1999년 5.16군사혁명기념비 철거 투쟁)가 부마민주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시민단체로서 민주항쟁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했던 일들이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기념사업회가 없었다. 이후 관련 단체가 생겨 우리가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실무자 한명을 쓰기도 힘든 작은 단체라서 자체 사업만해도 늘 버거운 형편이다."
- 오욕의 역사도 역사인데 그냥 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때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그걸 그냥 둔다고 교훈이 되느냐. 오욕의 역사가 만든 산물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무슨 표시가 있어야 한다. 가만히 손도 안대고 그냥 두는데 무슨 교훈이 되느냐. 그래 그 기념물들이 지금까지 시민들에게 교훈이 됐다면 우리 지역의 정치적 분위기가 지금과 같을 리가 없을 것이다."
-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많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바로 잡아나가야 할 게 있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안가인 궁정동에서 심복인 김재규의 총격에 사망한 것을 모두 '시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해'라는 단어는 왕조시대 임금이 살해 당했을 때 쓰는 용어다.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다. 객관적인 단어는 '사망'이다. '총격에 의한 사망'이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이 식사하는 것을 '수라를 든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수구세력의 저항을 두려워 피하지 말고 우리가 제대로 된 단어부터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 하나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할 때가 많은 것이다. 나중에 후대들이 이걸 제대로 고치려면 엄청 힘이 든다. 지금 '친일청산'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