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할로윈, 코스튬 입고 반 친구들과 함께
꿈틀리인생학교
유독 전부터 할로윈에 로망이 있었던 나는 첫 할로윈이 다가올수록 설렘과 동시에 어떤 분장을 해야 할 지 나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날에 후다닥 핼러윈 옷을 샀다. 그 옷은 다름 아닌 바나나 옷이었다. 나는 얼굴을 빨갛게 칠하고 노란 바나나 옷을 뒤집어쓴 채로 학교에 등교하였고, 죽음의 바나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학교 후 저녁에는 집마다 돌며 사탕 또는 달콤한 것을 얻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했는데 그때 열정적으로 집을 돌며 얻은 사탕들은 무려 두 달 동안 내 방에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노래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매 점심마다 음악실에 박혀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탤런트 쇼(Talent show, 장기자랑)를 한다고 하길래 나는 망설임도 없이 탤런트 쇼에 참여했다. 공연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그래도 첫 번째 순서는 부담이 제일 컸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는데 하필 내가 고른 곡이 더 쇼(The show), 오프닝으로 너무 적합한 곡이어서 오프닝을 하게 되었다.
이후 공연을 관람하시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나의 공연을 좋게 봐주셔서 나는 전교생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엄청난 땅 크기를 자랑하는 캐나다인 만큼 우리 학교 전교생은 1천 명이 넘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의 공연이 내가 그동안 했던 공연 중 제일 큰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평소 밴드라고 하면 기타와 드럼이 함께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밴드에 색소폰, 클라리넷, 트럼펫 등 정말 다양한 악기가 함께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교 밴드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그 웅장한 소리와 분위기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작은 목표는 학교 밴드에 합류하는 것이었고, 11학년 여름방학 동안 한 달간 색소폰을 배워 다음 학기에 학교 밴드에 합류하는 것에 성공했다. 비록 서투른 실력이라 처음에 같이 연습 할 때는 식은땀도 종종 흘렸지만, 그래도 다양한 악기들이 각자의 소리로 화음을 쌓으며 한 노래를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나는 종종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경험하자'라는 마인드로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그중 하나가 학교 다문화 동아리(Multicultural Club)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다문화 동아리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의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하고 주최하는 일들을 주로 하였고, 매 학기 새 유학생들이 왔을 때 학교를 안내하는 일들도 하였다.
그러다가 12학년(한국으로 보면 고3)이 되기 전, 나는 한 수업을 통해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확고해 지면서 부모님과 많은 상의를 하였고 대학을 결정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온전히 알아보고 계획하고 선택한 목표였기에 더 절실했던 거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살아생전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공부는 말 그대로 교과적인 공부이다.
물론 캐나다에 온 후 공부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12학년이 되며 더 어려워진 과목들을 한 번에 듣게 되었고 딱히 과외를 받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전부 해내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좋은 성적과 함께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2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고등학교를 잘 졸업했다.
지금 나는 내가 가고 싶어 했던 밴쿠버의 한 대학, 마케팅과에 재학 중이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어 한국에서 16~17시간이라는 시차를 견디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어쩌면 또 다른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순천에서만 생활했을 때 나의 세상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러한 내 세상은 꿈틀리에 가서 조금 더 넓어졌고 캐나다에 가며 더 넓어졌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많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해 처음 꿈틀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받아드리지 못했던 것처럼, 캐나다 첫 생활 때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던 것처럼,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근심 걱정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더 많은 경험과 세상을 위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