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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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지인을 만났다. 그동안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곤 했으나, 얼굴을 보게 된 건 실로 오랜만.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지인이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마스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반달처럼 휘어진 눈이 활짝 웃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손을 맞잡을 순 없었만, 잔뜩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가 이 만남을 상당히 기뻐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잠시 나눈 평범한 대화. 특별한 말도 아닌, 그냥 일상적인 안부.
헌데, 그 잠깐의 만남이 나에겐 햇살처럼 느껴졌다. 나의 '안녕'을 묻는 진심어린 목소리에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 버렸다. 다정함에 온기가 감돌았다.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훌훌 먹고 난 것처럼 따스하고, 개운하고, 든든했다.
그 짧은 만남이 내게 힘이 되었다. 그때부터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동기가 생겼고, 지속하고 싶은 의지도 생겼다.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 역시, 동기와 의지가 지속되는 결과의 일부다.
코로나를 겪으며,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혼자를 즐기는 타입이지만, 내 동력은 사람과 만나는 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다. 일단 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괜찮아, 너는 어때? 요즘 많이 힘들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 그 일이 내겐 어떤 약보다 효능이 좋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독사한 이들에게도, 다정한 안부를 나눌 존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절친한 벗이 아니어도 그냥 오며가며 안녕을 물어 줄 사람 하나만 있었다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부끄럽지만, 이런 마음 아픈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아차, 하는 마음으로 내 모습이 어땠는지 더듬어 보고, 비슷한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 내 근처에 홀로 외로이 지내는 사람은 없는지, 오랫동안 연락을 미루고 지내온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정한 대화가 사람에게 약이 되는 걸 경험했으니, 나도 쓸쓸한 누군가를 위해,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존재에게 말을 걸어야겠다. 너무 늦기 전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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