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 교수는 책 <사람의 자리>(2019)에서 과학은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디에 있어야 하며, 누구의 편이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이음
덮어놓고 좋은 기술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 정부는 2027년까지 세계 최초로 완전자율주행차를 상용화 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언론들도 몇 년 전부터 "5년 뒤엔..."이라는 전망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자칫 사회적 공론화나 합의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저도 자율주행차가 언제쯤 상용화될지 굉장히 궁금한데요. 이 목표치가 계속해서 뒤로 미뤄지고 있거든요. 원래는 올해쯤이면 다 상용화 될 거라고, 2020년을 목표로 내세웠던 분들이 많았는데 다 뒤로 미뤄지고 있잖아요. 아마 계속 미뤄질 것 같아요.
자율주행의 문제에 국한해서 생각해보자면, 언제까지 실현될 거라고 말들을 하는데, 왜 필요한가, 정말 필요하긴 한가, 또 이걸 완전자율로, 전면적으로 하는 게 꼭 필요한가, 무엇을 위해 좋은가 하는 이런 얘기들은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건 기술적 진보인 것만은 분명하죠. 하지만 그 기술적 진보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어떤 사회적 의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 더 얘기를 해야 해요. 가령, 자율주행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죠. 물론 개발하는 분들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얘기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사실 더 많은 연구나 검증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기술 개발 자체가 목적인 분들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통해서 더 안전한 이동을 실현하든, 더 친환경적인 도로를 만들든, 더 살기 좋은 도시 환경을 만들든, 무언가 추구하려는 공동의 목적에 부합해야 해요. 그런 논의들을 같이 해나가면서 기술개발이 이뤄져야하는데 그런 것 없이 일단 기술 개발 그 자체를 덮어놓고 옳은 것,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사회적 공론장을 만들어내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한데 그런 점이 아쉽습니다.
"4차 산업혁명 같은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어떤 역사적 흐름이고, 대세이고, 도달할 수밖에 없는 미래라고 전제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니 그 구성 요소로 지목되고 있는 AI(인공지능)나 로봇, 빅데이터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죠.
자율주행 기술도 그 중 하나겠죠. 물론 그 기술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영역이 얼마든지 있어요. 가령, 공장 안에서 안전하게 물건을 옮긴다거나. 하지만 그 기술을 정말 바깥세상으로 들고 나와서 수백만 명이 다니는 길거리에 전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봐요. 법률과 제도, 사람들이 길을 다니는 방식을 다 바꿔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이 차이에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면 실험실이나 제한된 공간뿐 아니라 전 세계를 그것으로 가득 채워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아쉬워요."
- 국가가 목표를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공학자로서 직접 연구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어떤 연구를 언제까지 성공시켜내겠다고 약속을 해야 그 연구 과제에 대한 인정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면은 있겠죠. 그런 약속을 하지 않으면 그 연구의 의의나 가치 또는 시급성을 인정받기 어려우니까요. 자율주행차를 (5년 뒤가 아니라) 20년 뒤에 개발하겠다고 하거나, 또는 5단계(완전자율주행) 말고 3단계까지만 개발하겠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연구를 지원하는 입장에선) 매력적이지 않죠.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도전해볼 만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 작업이라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꼭 5단계가 아니라 3단계 정도의 기술을 잘 개발해서 운전자를 돕는 게 더 안전하고 나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목표를 내세우긴 어려운 게 사실이죠."
- 기술의 발달이 낳는 사회적 갈등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과학기술인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일단은 별로 없어요. 전통적인 부국강병의 패러다임 안에서는 경제적이고 산업적인 필요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할 지식과 기술을 제공해주는 집단으로 과학기술자들을 상정해왔으니까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어떤 우려나 논의를 표출하는 일이 쉽지 않았죠.
그런 문제는 사회학자들이나 정치학자, 경제학자들이 고민하는 거지 과학자나 공학자가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여겼죠. 그러다보니 이공계 학생들도 그런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체득하게 됐죠."
과학기술이 올바르게 발전하려면 시민이 더 많이 질문해야
-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될 질문들이 있다면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지만 이게 우리가 겪고 있는 유일한 재난은 아니에요. 세계화 때문이든 기후 변화 때문이든, 또는 자본주의의 심화 때문이든 여러 가지 요인들로 사회 전체가 크게 흔들리는 일들이 계속해서, 더 자주 벌어지고 있어요.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계속 반복되는 위기와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해야 해요.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피해, 또 코로나19 확산, 아니면 산업재해 일반... 여러 가지 굉장히 큰 고통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고, 그때마다 우리 사회의 잘 안 보이던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돌봄의 현장이든, 노동의 현장이든 그 동안 잘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죠. 그때그때 그것들을 살펴보고 연구하고 어떻게 바꿔낼지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지금 닥친 위기가 유일무이한 위기이니 이것만 어떻게든 넘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선 안 되겠죠. 위기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곪아있던 상처들을 고쳐가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이번 NPO국제컨퍼런스에서는 '우리는 대면하지 않고도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십니다. 테크놀로지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으실 걸로 보이는데 어떤 내용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습니까.
"모두가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우리는 각자 집에 머물면서 온라인으로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어요. 그렇게라도 이 위기를 견디고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랐죠. 하지만 정말 촛불집회 때 광화문광장에 모였던 것처럼 광장에서 함께 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SNS, 배달 플랫폼 등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비대면 연결이 이 시민 사회를 유지시켜줄 수 있을까요. 과연,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 연결이나 연대도 배달해줄 수 있을까요. 테크놀로지로 배달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뭐,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 마지막으로, 기술의 변화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시민의 역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문제는 연구자들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연구와 기술 개발의 결과를 받아서 쓰기만 했어요. 앞으로는 질문이 늘었으면 해요.
이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인가, 이걸 통해서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까, 그리고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부합하는가, 부합한다면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을까, 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을 이끌어낼까, 이런 얘기들이 계속 시민사회 쪽에서 나와 줘야 해요.
그래야 과학기술자들도 그런 우려들이 있구나, 또는 이런 가치들이 경합하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겠죠. 또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도 무조건 빨리, 많이 개발하는 게 최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돼요."
[관련기사]
[2020 NPO국제컨퍼런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법으로 보호받는 노동자여야" (http://omn.kr/1pr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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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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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완전자율주행? 그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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