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교 궁륭 천장 용머리홍예종석(쐐기돌) 한가운데 용이 아래로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사찰로 드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고, 중생들이 수해(水害)를 입지 말라는 의미라 한다. 자세히 보면 용 입에 매단 줄에 엽전 세닙이 걸려 있다. 다리를 완성한 호암대사가 남은 엽전을 걸어 둔 것이다.
이영천
승선교 궁륭 하부 쐐기돌 한가운데에, 용머리가 아래로 향하고 있다. 속세 중생들이 큰물로 인한 재해(水害)를 입지 말라는 상징이다. 용머리 입에는, 줄에 걸린 엽전이 매달려 있다. 호암대사가 여기저기 시주를 받아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가 완공되었다. 그런데 엽전 세 닢이 남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부처님과 중생들에게 시주하는 의미로 달아맸다는 이야기다. 세 닢 엽전이 '덕은 무엇이고 재물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고 묻는다.
승선교는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시현(示現,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몸을 변화하여 나타내 보임)으로 축조한 다리다. 100일간 기도에도 관음보살을 시현하지 못했다. 이에 낙담하여,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려한다. 이때 어느 여인이 나타나 대사의 목숨을 구하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대사는 그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달았다. 이의 현시(顯示)로 승선교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승선교 홍예는 높이 7m에 길이 14m, 너비 3.5m 크기다. 단 경간 무지개다리로는 제법 규모가 있다. 반지름 7과 너비 3.5 숫자가 돋보인다. 다리 너비를 반지름의 절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의도적인 행위로 보인다. 크기와 넓이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다리가 분명하다.
3.5m에 등비(等比)의 숫자를 곱해 점점 확장되어지는 달팽이꼴 곡선(trisectrix, 와선)이, 승선교에 자연스럽게 응용되어 녹아들었다. 의도한 기하학의 균형과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시선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바라보는 모든 이의 마음에 균형점을 찾아준다. 승선교의 아름다움은 다리 규모에 적용한 숫자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조계산 슬픔이 비극의 현대사를 잉태하고
선암사는 조계산 동측 깊은 계곡에 들어 앉아 있다. 조계산 남측 인근으로는 낙안과 벌교, 그리고 순천이 있다. 선암사는 소설가 조정래 태생지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 <태백산맥>은 조계산 인근에 바탕을 둔 여수·순천사건(항쟁)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1948년 제주도에서 분단이 예상되는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제주 4.3항쟁이다. 극우단체의 잔인한 테러가 이어진다. 수만 명 선량한 주민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쫓기거나 옥에 갇힌다. 경찰은 악랄했고 무자비한 군인들까지 동원된다. 한라산 중산간 마을이 소개(疏開)된다. 이데올로그를 떠나, 인간성 말살이 자행되었다.
진압 차 제주도로 향하려던 군대가 여수항에 주둔하고 있었다. 양심적인 군인들과 군대에 소속된 남로당원들이 부대를 장악하는 사건을 일으킨다. 여기에 지역 좌익이 무장봉기한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해 10월 19일이다.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 2,000여명이 주축으로, 중위 김지회와 상사 지창수가 주동자였다. 다음날 여수와 순천을 장악한다.
반란군은 여·순 지역에서 27일까지 친일경찰과 극렬친일분자·악질지주 등 수백여 명을 사살한다. 반란군은 진압군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벌이며, 조계산과 백운산을 통해 지리산 방면으로 후퇴한다.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구(舊) 빨치산들과 결합, 분단반대와 통일을 지향하는 싸움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