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탑골공원, 당시에는 우국지사. 잡상인, 실업자들로 메웠다.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개방치 않아 한산하다.
박도
탑골공원에서 만난 걸인
학교를 그만두자 그길로 인생이 끝난 줄만 알았다. 막냇동생은 아직 철부지라 매 끼니 때마다 주인집 밥상을 건너다보고 우리 집 밥은 찬밥(쌀밥)이 아니라고, 반찬이 없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막내의 울음에 쩔쩔매는 어머니를 쳐다보기가 괴롭고 갑갑해서 나는 낯선 서울 시내를 마구 쏘다녔다.
그때 우리 집은 <경향신문>을 구독했다. 석간 배달시간이면 매일 같이 신문배달원은 밀린 신문대금을 독촉했다. 그는 당시 덕수상고생으로 여러 날 대하다 보니 그만 그와 친해져 버렸다.
어느 날, 그는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나의 사정을 어림한 듯 내게 신문배달을 권하며 자기 대신 가회동 구역을 맡아달라고 말했다.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며칠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그날도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발길이 멈춘 곳은 종로 탑골공원이었다.
그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실업자, 지게꾼, 잡상인, 날품팔이 노동자, 약장사, 관상쟁이, 시각장애인 점쟁이, 팔각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우국지사 등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들끓었다.
나는 여러 인간상을 대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후문 쪽에서 한 거지를 만났다. 그의 두 다리는 무릎 위까지 완전히 끊겨 있었다. 그 부분은 고무판으로 상처 부위를 싸맸지만 뾰족이 내민 살갗에는 피고름이 엉겨 있었다. 그 상처에는 쉬파리가 붙어 피고름을 핥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상처에 전혀 상관도 않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손을 내밀며 한두 푼을 구걸하고 있었다.
그의 몰골은 시꺼멓게 땟국이 낀 '아! 사람이 저럴 수도 있을까' 싶도록 처참했다. 그 거지를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멎은 충격과 함께 온몸이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그는 예순살은 족히 넘은 늙은이였다. 이미 인생의 막다른 황혼 길에서 무슨 미련이 있어서 두 손을 다리 삼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삶의 애착에 젖어 구걸하는가. 더 이상 살아봐야 앞으로 무슨 영화가 있다고, 구차한 목숨을 잇겠다고 두 발 대신 손으로 발을 삼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걸식을 하는가! 그 순간 이런 생각들이 퍼뜩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뭐냐?'
'16세의 사지가 멀쩡한 녀석이 학교를 못 다니게 됐다고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하며, 인생이 괴롭다고 죽음을 생각하는 게 얼마나 못나고 비겁한 일인가.'
'그래 지금 내가 죽는다고 치자. 그러나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내일 아침 해는 그대로 동쪽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부모만 가슴에 못이 박힌 채 두고두고 무능한 자신을, 비명에 간 자식을 원망할 테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죽는다고 해서이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해는 동쪽에서 떠오를 것이며, 나만 몹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억울해서 도저히 죽을 수 없었다.
'그래, 저 사람도 살겠다고, 하늘이 준 목숨을 버릴 수 없어 저렇게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데, 나는 그보다 낫지 않는가?'
그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그 거지는 내겐 생명의 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