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마음산책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문장이 나에게로 와서는 이렇게도 읽혔다. "(나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초기 멤버로 편집부에서 17년간 기획과 편집을 해왔다. 시민기자들의 탄생, 발전, 만개, 죽음을 모두 지켜본 최초의 목격자이자 조력자이며, 앞으로도 글을 써나갈 그들을 더 잘 돕는 편집기자가 되고 싶다"로.
'읽는 직업' 편집자와 편집기자인 나의 비슷한 고민
틀린 말은 없다. 모두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와 이런 공통점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저자들의 조력자'인 그가 저자들과(좀 더 구체적으로는 '연약하고 상처 입은' 저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연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그랬다. 그 고민의 결이 나와 꼭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는 말했다.
편집자는 메인스트림으로 직진해서 어떤 주제를 섭렵하기 좋은 직업이다.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선명히 구분하지 않고 둘의 경계를 지웠을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들의 글과 삶에서 받은 영향이 내 사적 영역에까지 스며들도록 나를 활짝 열어두었다. - 36p
나는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나를 지키면서 일하려고 애썼다. 취재기자가 아닌지라 핸드폰 번호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공개할 필요가 없었고, SNS 친구도 개인적인 관계에 한정했다(친구 수락의 기준은 딱히 없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 습관적 친구 요청은 대부분 거절했다. SNS를 한 지 8년이 넘었지만, 친구 수는 고작 100명을 웃도는 정도다. 모든 게시글은 친구 공개에 한정했다. 첫 책을 내고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볼 요량으로 이 좁아터진 SNS 문을 과감히 개방할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는 명함도 새로 만들지 않았다(자주 쓸 일도 없는데 괜한 쓰레기만 만드는 것 같아서다). 카톡으로 일하는 게 너무도 편한 걸 알지만,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시민기자와는 친구 등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일과 관련해 시민기자와 소통이 필요할 때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쪽지를 하나라도 더 보내고,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면 전화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민기자와 미팅도 잦았다.
매일 적어도 한 명의 처음 보는 시민기자를 상대하는 게 내 일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지킨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고민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사적으로 친근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보호벽은 이미 쌓아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나는, '마음의 힘듦'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내 마음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서 뾰족한 모서리가 둥글게 둥글게 다듬어질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너무 잘 알아서다. 자주 찢기고 상처 나고 곪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더 오래, 즐기면서 하려면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 보호벽 안에서는 시민기자에게 크게 상처받을 일도, 내가 상처를 줄 일도 없었다(아주 없었겠냐마는). 이 나름의 업무 원칙에 작은 균열이 생긴 건 7년 전쯤이다.
'만 시간의 법칙이라며... 한 분야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일하고 나면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뭐 그런 게 생긴다는데 나는 과연 그런가... 나는 정말 편집기자로 더 살고 싶은 걸까.'
자고 일어나면 매일 나에게 물었다. 답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알람처럼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그러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루 8시간 매일 '읽는 사람'이었던 내가, 잠자기 직전에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참 신기하리만치 재밌었다. 이 좋은 걸 왜 진즉 시작하지 않았는지 매일 과거의 나를 반성할 정도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시민기자들도 그랬다. 어떻게든 더 잘 쓰고 싶어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블로그에 쓰든, 브런치에 쓰든, <오마이뉴스>에 사는이야기를 쓰든 그들 역시 독자에서 '쓰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저자도 그랬다. 글쓰기는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쓰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며 덧붙인다.
편집자가 글을 꼭 써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이 점점 바뀌어 편집자는 글이든 책이든 써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가령 글쓰기는 삶에 대해, 자신과 타인에 대해 귀속감 같은 것을 뿌리내리게 한다. 다만, 아직 쓰고 있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글 쓸 계기를 만나지 못한 것으로, 그 계기가 주어질 때 분출시킬 만한 자원과 생각과 문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 165p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고 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