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단법인 오픈넷과 사단법인 두루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10.8
연합뉴스
이는 '명예훼손죄'가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악용된 완벽한 예시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고소인이 본인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예훼손죄를 악용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학교법인 측이 고소한 12명 중 단 한 사람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현재까지 수사를 받는 것은 본인을 포함해 2명에 불과하다.
지난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명예훼손죄를 이용한 전략적 봉쇄소송이 큰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와 관련하여 검찰은 2018년 5월 성폭력 피해사실 공개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적극 검토하도록 일선 검찰청에 지시하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따르면 가해자 측에 의해 고소당한 성폭력 피해자의 40%가량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한국여성의전화는 '성폭력 역고소 피해자 지원을 위한 안내서'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 8일 오전 11시에는 사단법인 두루와 사단법인 오픈넷 소속 변호사들이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형법 제307조 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요구했다. 기자 본인도 이번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기자회견 직후 해당 법률이 헌법에 위반됨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청구서가 헌법재판소에 접수되었다.
헌법소원 변호사단은 특정인의 표현이 '주로' 공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 적용의 애매함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다른 사건 판례에서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다른 표현에 대하여 위축적 효과가 미치지 않도록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요구된다"라고 판시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변호인단은 또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문제의 핵심이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관련하여 "이 법률이 폐지되면 사적 영역들에 대한 비난도 자유로워지는 것 아니냐"라는 반론이 나오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애당초 원칙적으로 모든 표현을 허용하고 타인의 사적 영역 등 내밀한 부분에 대한 표현만을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 입법을 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해외에서는 '명예훼손죄' 대신 '혐오죄'를 제정하여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표현만을 별도로 처벌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세계적으로도 극히 일부 국가에만 존재하는 법률이다. 특히 명예훼손죄가 존재하는 국가들도 해당 행위에 대해 '벌금형' 처벌만을 규정할 뿐, '징역형' 규정을 통해 명예훼손죄를 '자유형'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이와 같은 지점을 강조하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가 폐지 혹은 벌금형 단일화에 힘을 실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공개 변론을 열었다. 이제는 형법 제정 당시부터 유지된 낡은 억압을 박물관으로 보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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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일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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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 청구인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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