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사하는 짐 로저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사진)이 지난 2월 2020 평창평화포럼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로화는 15년 내 사라질 것이다'(2010년 예언), '통일 한국이 세계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다'(2019년) 같은 전망을 내놓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이번에는 "10대들은 일본을 떠나라"고 재차 경고했다.
3년 전에도 "내가 열 살짜리 일본인이라면 나라를 떠날 것"이라며 10대 청소년들에게 가출 수준을 넘어 '국출(國出)' 수준의 결단을 촉구했던 그가, 지난 5일에는 아사히신문 계열 매체인 아에라닷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엄격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전제를 깐 뒤 "10대들은 빨리 일본을 뛰쳐나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 '일본 쇠퇴론' 다시 꺼내든 이유
그가 '일본 쇠퇴론'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 중 하나는 현 일본 내각의 경제전략 때문이다. 그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전임자의 전략인 아베노믹스를 그대로 답습할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아베노믹스의 문제점이 스가 집권기에도 개선되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시중에 돈을 대량으로 풀어 경기회복을 꾀하는 아베노믹스와 관련해 "금융 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해 일본 주가를 끌어올렸다. 일본은행이 지폐를 찍어내고 그 돈으로 주식이나 국채를 마구 사들이면 주가는 당연히 오르게 된다"며 "(이런 식으로 나가면) 일본 엔화의 가치가 하락해 언젠가는 결국 물가가 올라 국민이 고통을 겪게 된다"면서 아베노믹스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스가노믹스' 또한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그는 "(화폐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 정책으로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는 역사상 하나도 없다"며 "(이런 정책의 결과로) 일부 트레이더(거래자)나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경제기조가 당분간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 "10대들은 빨리 일본을 뛰쳐나가야 한다"고 그는 경고한 것이다.
짐 로저스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책이 되기보다는 일시적인 경기부양책에 그치기 쉬운 아베노믹스가 중단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쇠퇴가 필연적이다. 100년 뒤에는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면서 "일본의 젊은이들이여, 일본 밖으로 뛰쳐나가라. 중국이든 한국이든 좋다"는 파격적인 권고까지 내놓게 됐다. 그의 판단에는 한국과 중국의 미래가 일본의 미래보다 훨씬 밝아 보이는 것이다.
분석을 그르치면 자기 돈이나 고객 돈을 잃을 수 있는 투자전문가들은, 통상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월급을 타는 학자들보다 훨씬 더 절박한 심정으로 정세분석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절박함 때문에 대국적인 판세를 놓칠 수도 있고, 또 금전 흐름에 과하게 집중하다가 금전과 무관해 보이는 판세 변화를 놓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돈이 될 것인가', '이익이 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면에서만큼은 투자분석가들이 학자들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경제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짐 로저스의 견해는 경청할 만한 부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9년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를 펴낸 모리시마 미치오(1923~2004) 오사카대학 및 런던정경대학 명예교수 역시 짐 로저스 못지않았다. 모리시마도 파격적인 일본 쇠퇴론을 내놓은 바 있다. 로저스가 100년 뒤에 일본이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한 데 비해, 모리시마는 그보다 빠른 2050년대에 일본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가 제시한 판단 근거들 중에는, 1945년 일본 패망 직후의 재벌개혁이 불철저해 재벌과 정치 권력의 유착이나 재벌의 부동산 투기 같은 부조리가 조장됐다는 점, 일본의 고도성장은 미국의 충실한 패전국이 돼 비굴하게 순응한 결과일 뿐이라는 점 등이 있다. 한마디로,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발전 동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로저스·모리시마의 예언... "일본 국가전략 뒤엎자"는 파격 제안도
로저스나 모리시마의 예언은 일본인들을 서운케 할 만하지만, 이들의 경고는 어디까지나 조건부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예언이다. 그러니 방법을 바꿔보라는 게 이들이 말하려는 핵심이다. 특히 모리시마의 경우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해법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의 일본 국가전략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을 정신적으로 이끈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는 김옥균의 갑신정변 이듬해인 1885년 3월 16일 <지지신보(時事新報)>에 기고한 '탈아론(脫亞論)'이라는 글에서, "문명개화에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아시아로부터 이탈하여 서양의 문명국들과 진퇴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웃 국가인 조선·중국을 악우(惡友, 나쁜 벗 또는 행실이 좋지 못한 벗)로 규정한 뒤 '이런 나쁜 친구들을 사절하자'고 말했다. 발전 가망성이 없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말고, '구라파' 선진국들과 손을 잡고 그들에게 배워야만 일본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게 그가 말하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핵심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략은 일본을 이끌어가는 이정표가 됐다. 탈아입구라고 해서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 후쿠자와 메시지에 따라 아시아와 연대하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한층 강화하는 방법으로 서양의 노선을 충실히 모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