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서울대학교병원 감염병동 간호사
참여사회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이하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최은영 간호사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 거부와 이어진 정부 합의에 분개했다. 공공의료 정책을 사실상 중단시킨 정부·여당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의 합의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해서다.
의료·간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중환자를 눕힐 병상도 마땅치 않다. 필수적인 감염병 병원은 미비하고 새 감염병이 창궐하면 제대로 된 교육, 훈련 없이 1~2시간 교육만으로 현장에 투입될 것이다. 우리 의료 민낯이 그렇다는 것. 최 간호사의 답은 명확했다. 공공병원 설립 등 공공의료 확충. 답은 분명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꽉 막혀 있다.
- 현재 맡고 있는 코로나19 업무를 설명해달라. 코로나 환자들이 입원 후 받는 의료적 처치는 또 무엇인지?
"기존 업무에 간병인이나 보호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는 다른 환자와 접촉하는 걸 막기 위해 별도 통로로 입원하게 된다. 환자가 내뿜는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텐트 속에 환자를 모신다.
입원하면 환자의 병력 조사부터 한다. 기저 질환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필요한 검사와 처치를 취한다. 환자 연령대가 높고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 대소변을 처리해줘야 하고 밥도 떠먹여야 한다. 치매가 있거나 정신 병력이 있는 환자는 몇 배의 주의가 필요하다.
호흡기를 달고 있어도 상태가 좋지 않은 120kg 체중의 환자를 4~5명의 의료진이 끙끙대며 엎드리게 해서 폐의 환기를 도와주기도 해야 한다. 환자의 식사도 간호사들이 전부 챙겨야 하고 병실 침대, 바닥, 화장실, 변기까지 평상시에는 청소를 담당하는 분들의 몫이지만 현재는 간호사들이 맡고 있다. 환자 보호자들의 각종 민원도 처리하고 심지어 택배까지 배달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 많이 지쳤을 것 같다. 간호사들의 건강도 걱정되고. 무엇이 가장 힘든가?
"끝이 없다는 게 제일 답답하다. 기약 없는 거. 예기치 않게 쏟아지는 환자들. 그럴 때 좌절한다. 어느 정도면 잦아들겠구나, 예측할 수 있다면 마음의 준비가 가능하다. 대구에서 폭발했고, 이태원과 광화문 등 예기치 못한 집단감염과 수많은 환자가 발생하면 불쑥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들이 있다. '언제까지 이 상황을 버텨야 하나.' 감정과의 싸움이다.
간호사는 '데이-이브닝-나이트'로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수면시간이 더 들쑥날쑥해졌다. 새벽 3시에 간신히 잠들었다가 2시간 자고 일어나는 경우라든지... 환자의 24시간, 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해결해야 하는 역할이다."
왜 발등에 불 끄듯 이야기하는 것인가
-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료진에 대한 시민들의 걱정도 크다. 의료진들도 감염병에 두려움을 갖기 마련 아닌가?
"두려움은 당연하다. 의사든 간호사든 직종을 떠나 누구나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사전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감염병을 대하는 자세는 겸허해야 한다. 우리에겐 자료도 없고 축적된 데이터도 없다. 감염병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자신만만하게 감염병에 덤비는 오만은 과학이 아니다. 두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간호사와 의사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잘못됐다. 의료진에게 강제로 감염병 환자를 맡기는 것보다 자원자를 모집하는 게 낫다. 자기 여건상 환자를 볼 수 없는 의료진도 있다.
실제 과거 메르스 때 같이 일했던 동료 중 하나는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고 자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여서 감염병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의 의견은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감염에 취약한 부모가 아이들을 접촉해 2~3차 감염 우려가 있는 것이다. 두려움과 회피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원자를 선발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줘야 한다."
- 2015년 메르스 때에도 현장을 지키셨다. 그때와 비교해본다면?
"방역은 달라졌다. 메르스 때는 기본적으로 역학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환자 동선 파악이 어려웠다. 평택에 있던 환자가 삼성병원에 가게 됐고 삼성병원에서 치료받던 사람들이 동시 감염되는 일이 있었다.
이 환자가 평택 어디에서, 어떻게 병원에 갔는지 동선도 공개하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서로가 서로에게 감염병을 전파를 시키게 된 것이다. 그건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지금은 역학조사를 통해 접촉자를 최대한 찾고 있지 않나? 자가격리도 이뤄지고 있고.
그러나 의료 부분은 크게 바뀐 게 없다. 메르스에 비해 코로나는 전파력이 강하다. 메르스 때는 중환자실이 지금처럼 모자랄 것이라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다만 당시에도 언제든 감염병은 올 것이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면 할수록 우리가 모르는 질병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 서울대병원 노조가 요구했던 것도 공공의료 영역을 확대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감염병에 대한 대책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한 것이다. 메르스 이후 정부가 음압격리병상을 일부 늘렸지만 공공병원 등 공공의료 영역은 늘지 않았다.
공공병상 부족은 이번 코로나 때도 확인됐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음압병실은 7개(1인실)다. 감염병 특성상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거나 산소 요구도가 높은 중환자가 늘고 있는데 그들을 치료받을 수 있는 병실은 7곳에 불과하다. 방법이 없으니 침대를 더 갖다 놓고 현재 12명까지 보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주로 중환자들이 찾아오는데 병실은 제한돼 있다. 치료 기회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우려를 굉장히 많이 갖게 됐다. 이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 왜 감염병이 터지고 나서야 발등에 불 끄듯 이야기하는 것인가."
코로나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이 정도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