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9일 공포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진화위법)에 의해 12월 10일이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출범합니다. 2010년 1기 위원회의 문을 닫은 지 10년 만입니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알려내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신산스러운 세월도 마침표를 찍을 기회가 왔습니다. 2021년부터는 진실을 밝히는 조사의 대장정에 들어갑니다. 어렵게 세워진 국가기구인 만큼 이번 위원회에서는 유족과 피해자의 해원이 가능하길 바랍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부터 전체 200여 명이 넘는 직원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국가폭력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겠지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진화위에 파견 나온 공무원이든, 민간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뛰어든 각계의 전문가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하나의 목표를 향할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애쓴 결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진화위는 그만큼 역할도 크고, 기대도 많습니다. 책임 또한 엄중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지난 1기 진화위에 고 이내창 의문사 사건을 진정하고, 애면글면 사건 조사를 지켜보다 기어코 사건을 취하하기에 이른 사람의 입장에서 2기 진화위 출범을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희망보다는 불안이, 믿음보다는 의심이 앞서게 만듭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사건을 진정하고 나면, 또 감감무소식이지 않을까. 두려움을 안고 2기 진화위를 기다리면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국가든, 시민사회단체든 최소한 이런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몇 가지 지점을 짚어봅니다.
출발은 반성이어야
진화위법이 통과됐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의아함은 단어 사용의 모호함이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라는 문장은 묘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진실'과 '화해'가 같은 계열의 단어가 아닌데도 왜 굳이 가운뎃점을 사용했을까, 궁금했습니다. 화해에 중심을 두고 싶은 마음이 앞섰거나, 진실의 무게를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위원회의 목표가 화해이니, 화해할 수 있는 진실만을 구하라는 강요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다 '정리'라는 단어까지 용어에 들어갔으니 의심이든, 오해든, 곡해든 안 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사를 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직도 와 닿지 않습니다.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가 사과하고 그 피해를 배상할 때 비로소 화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화해의 결과로 인해 보다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 정리가 됐다고 할 텐데, 어떻게 진실을 구하고, 화해를 하고, 정리를 해낼지 궁금하기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2기 진화위도 그 근본적인 물음 앞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진실의 무게를 누구보다 크게 느끼는 분이 진화위에서 일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그 일을 하는 사람들, 조사관이든 행정직이든 위원이든 누구든 진화위에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사'가 과거에 벌어진 어떤 사건이 아니라 현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 사건이 되어야겠죠.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완전한 진상규명,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진화위 내에서는 과거사라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과거완료형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는 자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학살', '테러', '살인', '의문사', '고문', '강간' 등의 단어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그 잔혹한 단어의 생산자가 국가라는 점을 잊고서는 진화위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진화위의 시작은, 조사의 출발은, 반성이어야 합니다. 국가가 힘없고 가여운 유족과 피해자에게 큰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 위해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려 최선을 다하는 게 진화위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하고, 위원회 구성원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위원회의 목적이 화해라 하더라도, 국민화합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진실이 먼저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헷갈릴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위치를 자주, 스스럼없이 잃어버렸던 1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유족 또는 피해자의 삶이 남루한 이유가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해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