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의 북한에서 마지막 칠년의 저술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문학동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 본문 89쪽.
남북 분단이라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백석은 왜 북을 선택했을까. 사상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았던 백석의 선택은 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고향'이었다고 봐야 옳을 듯하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또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벌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이 백석에게 최악으로 여겨졌을지, 죄처럼 그를 옭아맸을지는 단언할 순 없다.
백석이 북한에서 자유로운 창작의 나래를 펴지 못한 것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958년이 저물어갈 때, 백석이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 독골이라는 산골에 배치된 것이 정치적 차원의 유배인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했던 시인의 자발적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데올로기의 자기장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상상은 김연수 작가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이를 유배로 인식할 뿐이다.
1996년 85세로 생을 마감한 백석을 굳이 정치적 탄압으로 숨졌다고 보는 것도 북한사회의 경직성에 기인하겠지만,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시바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중략)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 본문 31쪽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백석의 본명인 기행이다. 사회주의 체제로 빠르게 변모하는 북한에서 기행은 러시아문학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언어 속에 창작의 욕망을 감추고 문학적 감각은 유지하려는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존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주의 개조는 기행에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으로 살아가길 강요한다. 그런 인간인 척 시바이(연극)를 하며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획일적인 사회주의 인간형을 거부하고 그 현실과 맞설 것인가의 경계에 기행은 서 있다. 이는 곧 자신을 속이면서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암흑의 현실에 절필할 것인가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이념의 하중이 상대적으로 덜한 동시(童詩)를 쓰며 기행은 문학이 풍부한 사상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동문학 토론회에 불려가 자아비판을 당하고 결국 유배에 가까운 축산반 배치를 받고 오지 산골로 가게 된다.
작은 행복, 다채로운 빛이 사라져가는 현실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