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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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에서 발생한 이번 어업지도 공무원 피살사건을 국제기구에 회부하고 싶어한다. 국제형사재판소나 유엔 안보리로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25일 치 통지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한 것에 대해,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우리는 북한이 한국에 해명과 사과를 전한 것을 안다"며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김종인 위원장은 26일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 화형 만행 진상조사 TF' 회의에서 "정부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남북 당사자에 의한 해결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ICC와 유엔 안보리 모두 회부 가능성 지극히 낮아
일부 언론 기사들은 김종인 위원장이 언급한 국제형사재판소 옆에 ICJ라는 약자를 병기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재판소가 국제사법법원(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인 듯한 오해를 줄 여지가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약자는 ICJ가 아니라 ICC다.
상설국제사법법원(PCIJ)를 계승해 1946년 설립된 ICJ가 국가를 원칙적인 소송당사자로 인정하는 데 비해, 2002년 창설된 ICC는 국가가 아닌 개인을 법정에 세운다. 또 ICJ가 당사국이 제기한 사안 또는 유엔 헌장이나 조약에 규정된 모든 사안을 다루는 데 비해, ICC는 집단학살·전쟁범죄·반인도적 범죄 같은 중대 형사사건을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ICC에 회부하자는 김종인과 국민의힘의 주장은 '북한 지도자나 하위 책임자를 국제 형사법정에 세우자'는 의미를 담는다. 북한 지도자나 하위 책임자에게 형사 범죄자 이미지를 씌우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되레 진상규명과 문제 해결을 원천 봉쇄하는 악수가 될 수 있다. 이 점은 ICC의 관할권 문제에서 드러난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13조에 따르면 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째는 당사국에 의해 사건이 회부된 경우이고, 둘째는 유엔 안보리에 의해 회부된 경우이고, 셋째는 국제형사재판소 소추관(검사)이 독자적으로 사건에 착수한 경우다.
제12조 제2항에 따르면 첫째·셋째에 조건이 붙는다. 범죄가 발생한 국가나 범죄 혐의자의 국적국이 위의 로마규정을 수락했거나 아니면 재판소의 관할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이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이런 조건이 나오게 됐다.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ICC가 사건을 다룰 수 있다. 이 점에 관해 정인섭 서울대 교수의 <신국제법 강의>는 이렇게 해설한다.
범죄 발생지국이나 범죄인 국적국 중 어느 한 국가가 규정 당사국이면 재판소는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피해자 국적국만이 국제형사재판소의 당사국이고 범죄인 국적국과 범죄 발생지국은 당사국이 아니라면 재판소는 범인을 재판할 수 없다.
이번 공무원 피살은 북한 영역에서 북한군에 의해 발생했다. 따라서 북한이 로마규정에 동의했거나 아니면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해야만, 위의 첫째·셋째에 따라 ICC가 사건을 맡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로마규정을 수락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할지도 확실치 않다.
김종인 위원장은 ICC나 유엔 안보리로 사건을 가져가자고 했다. 그가 말한 두 번째 방안대로 안보리에 갖고 갈 경우, 5대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안보리에 의해 사건이 ICC로 넘어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북한이 로마규정을 수락했는지,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을 받아들였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신속히 사과한 데다가 미 국무부 관계자까지 사과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관계를 악화시킬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공무원 피살 사건이 ICC나 안보리에 회부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사태 지연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