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은서점에서 개최한 낭독회
주영헌
시 낭독회를 다니다 보면, 행사 말미 독자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때 받는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요즘 시가 왜 어려운가요?'입니다.
제가 봐도 요즘 시는 어렵습니다. 10여 년 이상 시를 써 왔고, 평론으로 등단을 한 저도, 어려운 시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하나도' 파악이 되지 않는 시도 있죠.
그런데요, 모든 시를 다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시뿐만이 아닙니다. 한국말로 쓰여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많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등의 현대 철학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역상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에서 사고의 회로가 연결되지 않아서죠.
시인 '이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시의 난해함
생각해보면, 요즘 시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시가 어려워진 까닭이 2000년대 초 미래파의 활보 이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그 이전에도 어렵고 실험적인 시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그 시인은 모두가 잘 아는 시인 '이상'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상의 시를 배울 때면 곤란함이 많았습니다. 한용운 시인이나 김소월 시인 등의 시도 은유와 환유 등으로 밑줄을 그리면서 암기했습니다. 그래도 의미가 파악되었기 때문에 읽을 만했는데요, 이상 시인의 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가역반응>이라는 시가 있는데요, 이렇게 시작합니다. '임의의반경의원(과거분사에관한통념) / 원내의한점과원의한한점을연결한직선…' 이해되시나요. 시의 부분을 옮겨왔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운 까닭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시인 이상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모더니즘 선구자이자 불세출의 천재 시인. 저는 이상 시인을 '모더니즘의 선구자'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불세출의 천재 시인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분명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유독 그 혼자만 천재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 시기에 활동한 다수의 시인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가 천재라고 주목받는 까닭은 '당시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시'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상 시인의 맥이 끊겼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꽃>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시도 쉽지 않습니다. 그는 '무의미 시'라는 시론을 확립했는데요, 그의 <김춘수 전집 2 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상이 없을 때 시는 의미를 잃게 된다. 독자가 의미를 따로 구성해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시가 가진 의도와는 직접의 관계는 없다. 시의 실체가 언어와 이미지에 있는 이상 언어와 이미지는 더욱 순수한 것이 된다(문장사, 1984).'
조금씩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시죠.
서정시의 퇴보가 시의 난해함으로 연결된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 시는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해 '쉬운 시'와 '어려운 시'가 동시에 있었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그 혼용의 폭이 넓었기 때문에, 어려운 시 만큼이나 쉬운 시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쉬운 시들을 보통 '전통 서정시'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서정시의 시론도 따지고 보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정시는 왜 퇴보한 것일까요.
그것은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근현대의 한국은 정치적 혼란기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합니다. 시인들도 같이 맞서 싸웠습니다. 다만, 시인들은 시로 싸웠죠. 이 시기의 시를 '참여시'라고 부릅니다. 참여시란 '정치·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변혁을 추구하는 시'입니다.
세상이 뒤숭숭하고 불행한 사건이 넘쳐나는 시기 사랑과 세상을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서정시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당시 도종환, 서정윤 시인이 서정시인으로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서정시인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나면서 서정시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요. 2000년대 이후 미래파의 등장으로 서정시는 다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합니다.
난해함에 한 획을 그은 미래파의 등장
미래파 시를 소개할 때 '파편성'을 그 예로 듭니다. 파편이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서진 도자기 한 조각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단 한 개의 조각만이 내 손에 있습니다. 이 조각 하나만으로 도자기의 원형을 떠올리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시는 '파편성' 등으로 무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