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렌터카공제조합이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장
A씨 제공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사고가 났다. 빗길 운전을 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대리운전업체에서 추천한 대리운전보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별 탈 없이 보험처리가 됐다. 그런데 3년 후, 사고비 중 일부를 배상하라는 소장이 날아왔다.
지난 9월 23일, 소액재판장에 10명의 대리운전기사가 피고인이 됐다. 내용은 같았다. 렌터카공제조합이 렌터카를 대리운전하다 사고 낸 기사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이다. 대리운전보험에 가입해 사고 후 보험처리를 한 기사들은 왜 법정에 서야 했을까?
지난 2월 구상금 청구 소장을 받은 대리운전기사 A씨. 2017년 5월에 난 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그가 운전했던 차량이 렌터카였다. 제주도는 관광지라는 특수성 때문에 렌터카를 대리운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인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차량 제공을 할 때도 렌터카인 경우가 많다.
보험처리까지 이미 끝난 사고에 대해 3년만에 날아온 소장의 원고는 전국렌터카공제조합(아래 렌터카조합). '렌터카 산업·조합원의 실질적 이익을 위한 비영리 법인'인 렌터카조합은 보험도 취급한다.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과 동일한 상품·보상·자배법상 의무보험 가입인정·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적용하는 보험을 다룬다고 홈페이지에 명시했다. 무엇보다 렌터카업계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걸 강조했다.
"소액사건이지만 진중하게 다뤄주셨으면..." 판사, 이례적으로 판결을 미루다
렌터카조합으로부터 구상금 청구를 받은 이는 A씨뿐만이 아니다. 2018년 경기도 시흥시에서 렌터카를 대리운전하다 사고가 난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대리운전 콜을 받고 갔더니 회사가 임직원에게 제공한 렌터카 차량이었다. 운전 중 사고가 났고 이후 과정은 A씨와 동일하다.
C씨는 아직 소장을 받지 못했지만, 구상금 청구 소송을 하겠다는 렌터카조합의 전화를 받았다. 2019년 렌터카를 대리운전하다 생긴 접촉사고로 인한 비용이었다. C씨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8월에 렌터카조합 관계자가 전화해 차량 수리비 포함 차에 타고 있던 3명의 치료비용까지 총 300여만 원을 구상금 청구할 예정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대리운전 콜이 잡혀갔더니 고객의 차가 렌터카였다, 보험으로 처리가 다 됐는데 대리운전사 개인이 또 렌터카 업체에 비용을 내는 게 맞나'라고 호소했다. 그랬더니 관계자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대리운전자에게 300만 원은 큰돈인데 정말 이걸 물어내야 하는 거냐"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C씨의 사례를 보면, 렌터카조합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구상금 청구 소송 외에도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상대로 추가 소송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앞서 구상금 청구 소장을 받은 이들은 지난 9월 23일 법정에 섰다. A씨와 B씨는 소액재판으로 법원을 찾았다. A씨는 "판사님이 보기에도 보험사에서 처리한 비용을 다시 대리운전 기사에게 부담하라는 건 부당하지 않느냐"라고 호소했다. B씨는 "이 재판이 일개 소액재판이지만 법적 다툼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님 이 사건을 진중하게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사건으로 피고인이 된 대리운전기사는 총 10명이었다.
판사는 당일에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10월 21일 변론을 듣겠다고 했다. 소액재판은 보통 당일에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사건이 많고 배정 시간은 많지 않아 이른바 '3분 재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소액재판은 소가 3000만 원 이하의 소송으로 ▲손해배상 ▲대여금 ▲구상금 ▲임대차보증금 등 민생사건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날 판사는 변론기일을 잡고 대리운전기사와 렌터카조합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원고 렌터카조합 입장 "어쩔 수 없다... 억지 소송이 아니라 대리운전보험에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