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재성지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곽동운
죄인의 신분이 된 정약용은 2월 27일 밤에 감옥에서 나와 이튿날 유배길에 올랐다. 서울서 장기까지는 천리 먼 길이다. 내려가는 길에 하담의 선영에 들러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처자와 이별할 때는 꿋꿋한 모습을 보였는데, 부모님 무덤 앞에서는 서러움이 북바쳤다.
어머니 해남 윤씨부인에게서 출생한 삼형제 중 하나는 참수되고 둘은 천리 길에 유배되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이 「하담별(荷潭別)」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버님이여, 아시는지요
어머님이여, 아시는지요
가문이 갑자기 무너지고
죽은 자식 산 자식 이꼴이 되었어요
남은 목숨 보존한다 해도
크게 이루기는 이미 틀렸어요
자식 낳고 부모님 기뻐하셔서
부지런히 어루만져 길러주셨지요
하늘 같은 은혜를 갚아야 마땅하나
풀 베듯 제거당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는
자식 낳았다고 축하를 못하게 했군요.
유배형을 받으면 도사 또는 나졸이 지정된 유배지까지 압송하여 고을 수령에게 인계하고, 수령은 죄인을 보수주인(保授主人)에게 위탁한다. 보수주인은 그 지방의 유력자로서 한 채의 집을 배소로 지정하고 유죄인 감호의 책임을 졌으며, 그곳을 배소 또는 적소(謫所)라고 하였다. 배소에서 유죄인의 생활비는 그 고을 부담의 특명이 없는 한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정약용의 경우, 고을 부담인지 자부담인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3월 9일 경상도 장기에 도착하여 성문 동쪽 시냇가 자갈밭에 있는 늙은 장교 성선봉의 집에 거처를 정하고 머물렀다. 고을에서 지정해 준 배소였다. 유배형에는 따로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 임금이 특사로 해배해주면 다음날이라도 풀리고 아니면 종신형이다.
정약용은 기약없는 장기현의 유배생활을 시작한다. 사형당한 셋째 형과 신지도로 유배된 둘째 형 그리고 지난날 뜻을 함께했던,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동지들을 기리면서 유배지의 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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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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