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원 박재혁 의사의 가계도박재혁은 부친의 가계는 알 수 없지만, 모친의 가계는 분명하다. 하지만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다.
이병길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성씨를 갖도록 하는 민적법(民籍法)을 1909년에 시행하였다. 이때부터 평민과 노비는 양반과 같이 성과 본을 가지도록 제도화가 되었다. 성이 없던 사람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면 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였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 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이때 성씨의 종류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박희선은 1909년 사망하였기에 현재 제적등본 등을 통해 부모 형제를 파악하기 힘들고 그와 관련한 인척들이 등장하고 있지 않다. 이런 사실을 통해 본다면 양반보다는 평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당시 박재혁의 부모와 외가가 살았던 부산시 동구 범일동과 동래구 복천동이 전통적인 양반의 거주지가 아니었던 것도 한 이유이다.
최근까지도 그의 이름은 박희선이 아닌 박광선(朴光善)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이것은 부인 이치수가 생존할 당시 박재혁 의거를 최초로 추모한 신문 <민주중보(1946.03.01.)> 보도에서부터 비롯된 듯하다. 그런데 훗날 박재혁이 중국으로 갈 때 돈을 빌려준 인물이 경북 왜관의 박국선이다. 이름 끝 자 돌림이 '선'이라 친척의 항렬일 가능성도 있다. 훗날 박재혁의 사후양자가 박기동이기에 밀양 박씨와의 연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어떤 정보도 없다. 그는 형제 없는 독자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아무런 친인척이 그의 사후 박씨 집안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희선은 세세청빈한사(世世淸貧寒士)였다. 즉 대대로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집안사람이었다. 그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박희선과 달리 모친인 이치수의 가계 정보는 제적등본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치수는 부친인 경주이씨 이호근(李浩根,?~1894.5.2)과 모친인 경주김씨 김유금(金有今, 1844.4.29~1929.11.23)의 장녀로 1873년 8월 7일 태어났다. 김유금의 부모는 김익련(金翼連)과 박소옥(朴小玉)이다. 이치수는 동래면 복천동 188번지에 살았었다. 이치수의 부친 이호근은 박재혁이 태어나기 1년 전인 1894년 5월 2일 사망하였는데 당시 주소가 동래면 복천동 188번지였기 때문이다.
의사 박재혁 가족의 삶터
박희선과 이치수는 1892년 결혼하여 부산부 범일동 183번지에서 살았다. 1895년 5월 17일 장남이자 외동아들인 박재혁을, 1909년 1월 11일 여동생 박명진을 낳았다. 출생한 범일동 집은 47평이었다. 현재 범일동・좌천동 가구거리의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이 생가터임이 알려지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