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거기서 나와?!예고도 없이 우리 집 거실에 출몰한 6kg의 전어 떼
이은영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오배송인가 싶어 인터넷 창을 열어 주문 목록을 확인했다. 세상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힌 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주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구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콩깍지가 벗겨진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때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던 내가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해봤다. 명백한 판매자 오배송이 아닌 구매자 주문 실수였다.
상황은 이러했다. 내가 민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전어 #민어 해시태그를 걸어놓은 판매자의 전어 페이지로 넘어갔다. 나는 당연히 민어로 검색해서 들어갔으니 민어를 판다고 생각하고, 상세 페이지를 꼼꼼하게 보지 않고 주문했다.
전어 떼의 공격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엄마를 위해, 일단 뭐라도 위로가 될만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다. 주문서에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인아저씨가 자신의 실수로 민어를 전어로 오배송한 건가 싶어 당황하실 수도 있으니 먼저 구매자 주문 실수임을 밝혔다.
"네. 그래서 혹시 민어로 교환이 가능한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
"전어를 6kg이나 주문하셨네요? 그런데 이건 생물이라서 저희가 물건을 돌려받으면 다 폐기 처분해야 해요. 죄송하지만 저희도 도와드릴 방법이 없네요."
옷도 아니고 아이스박스에 넣어져 하루 만에 온 생물이니 당연한 답변이었다. 머리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민어를 드실 생각에 설레하던 엄마는 예고도 없이 우리 집 거실에 출몰한 6kg의 전어 떼에, 갑자기 몸이 아파지는 거 같다며 방으로 들어가서 누우셨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순간 든 나의 생각이었다.
'이거 글로 쓰면 재미있겠는데?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이건만, 6kg의 전어 떼는 우리 엄마를 앓아눕게 했다. 가을로 들어선 날씨와도 딱 어울리고 시의성이 있어. 그래 써보자.'
딸의 주문 실수로 인해 속상한 엄마와 달리 철없는 나의 입가에는 익살맞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아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빠. 나랑 같이 저거 차에 싣고 친척 식구들에게 나눠 주고 와요."
그 순간 두 어깨가 축 늘어진 엄마가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 나오셨다.
"전어는 잔가시가 많아서 줘도 좋아하지 않아. 기름이 많아서 구워 먹으면 고소하긴 하지만, 조금만 먹어도 질린단 말이야. 그리고 전어는 안 먹는 사람은 안 먹어."
"에이~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인데?"
"그 말은 또 어떻게 알아?"
"제품 페이지에 떡! 하니 쓰여 있더라고."
하마터면 마흔의 나이에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을 뻔했다.
오늘도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