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가전제품으로 만든 예술 작품. 인간의 모습을 해골로 형상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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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크기가 삶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세탁기가 집으로 배달되던 날, 어쩐지 전보다 세탁기가 작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큰 용량을 권하던 판매사원의 말이 생각나고 이미 내 눈은 커다란 세탁기에 눈높이가 맞춰진 것도 같고 말이지요. 문득 이불 빨래를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더군요. 조금 더 큰 용량으로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의 마음도 아주 잠깐이지만 들었어요.
그러다 '행여 이불 빨래가 어렵다면 세탁소에 맡기든 빨래방에 가서 하면 되지!' 이런 배짱이 내 안에서 슬그머니 고갤 들어요. 우려와 달리 이불 빨래하기에 세탁기 용량은 충분히 넉넉했고요. 설령 어렵대도 일 년에 이불 빨래를 몇 번이나 한다고 그 큰 용량의 세탁기가 필요한가 말이지요. 장마 때 빨래가 마르지 않아 곤혹스럽다면 한두 번 빨래방을 이용해도 좋겠다 싶으니 안심이 되더군요. 강요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요.
용량이 큰 가전제품이 늘어날수록 집이 좁게 느껴집니다. 더 큰 집으로 옮겨가는 욕망이 꿈틀댑니다. 우리의 욕망은 무한대로 커갑니다. 그런데 이 욕망을 계속 부풀리는 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걸까요? 혹시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욕망은 아닐까요? 내가 정말 원하는 삶과 세뇌당한 삶 또는 남에게 비치는 삶 사이에서 우리는 진정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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