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사과나무의료재단 이사장
고양신문
- 의료화가 오히려 건강수명을 줄이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대사회는 건강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요. 심지어 젊은이들마저도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서 비타민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챙겨먹고 있고, 정부도 건강과 의료복지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죠. 기업은 건강, 항노화 관련한 상품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고요.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오래 살자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반대예요. 기대수명은 정체 상태에 들어가 있고,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그 이유가 '과잉'에 있다고 생각해요. 과도한 약 복용, 과잉 의료화, 과잉 음식이 없던 질병을 만들고 건강을 약화시키고 있다고요. 우리가 건강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과잉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소식(적게 먹는 것)과 운동이 있어요. 주위에 널려 있고 언제나 구할 수 있는 달달한 음식과 편리한 도구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해요."
- 책에서도 소식을 강조하셨습니다. 소식이 건강에 좋은 이유를 간략히 듣고 싶습니다.
"매우 단순하죠. 많이 먹으면 내 몸에 과잉이 쌓이는 거잖아요. 특히 기름지고 달달한 음식을 많이 먹으면 내 몸에 필요한 생명에너지를 초과하게 되고, 그 과잉은 몸 곳곳에 쓰레기로 쌓이죠. 대표적으로, 많이 먹으면 간에 지방이 끼어요. 요샌 술을 안 먹는 사람도 지방간이 계속 증가하는데 당연히 그건 많이 먹어서 그래요.
그리고 인류사에 한 번도 없었던 이 과잉의 시대로 쌓인 내 몸의 쓰레기는 내 몸으로 하여금 이상한 현상으로 인식되어 염증반응을 일으키죠. 이 염증반응 역시 내 몸에 쓰레기를 양산해요. 소식이 건강과 장수에 좋다는 것은 오래된 지혜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된 과학적 의학적 사실이기도 해요.
또 생각해 보면, 음식이 우리 몸에서 소화 흡수되어 각 세포에 전달되는 과정은 엄청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에요. 우리가 뭘 먹으면 졸리는 이유는 음식의 해체와 흡수에 필요한 에너지를 위해 근육과 뇌로 가는 에너지를 줄여달라는 내 몸의 신호일 수 있어요. 입에서부터 대장까지, 소화관 통과시간은 보통 하루가 넘게 걸리는데 그동안 우리 몸 내부는 대량의 소화효소를 만들어야 해요. 또 그것을 흡수해 간에서 화학적으로 변형해서 심장을 거쳐 내 몸 세포 곳곳에 보내야 하고, 나머지는 또 어딘가 저장해야 해요. 그동안 내 몸은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어요. 많이 먹으면 부대낄 수밖에 없어요.
나이 들수록 소식은 더 중요하죠. 나이 들면 소화력이 떨어지고 동시에 만성염증의 징후가 높아지거든요. 이때 음식을 과잉 섭취하면 노폐물이 더 많이 쌓이고 만성염증도 더 악화될 수 있어요. 지금은 특히 음식 과잉의 시대예요. 모자라서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병을 만들어요. 무엇보다 영양성분은 없이 당분만 가득한 정제 탄수화물 음식과 가공식품을 줄여야 해요."
간헐적 단식, 몸에 좋다
- 소식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참 어렵죠. 보통 소식을 매회 식사량을 기존 식사량에서 20~30% 이상 줄이라 권하지만, 혀와 포만감의 유혹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하루 두 끼만 먹어요. 저녁 약속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을 거르죠. 그리고, 한번 먹을 때 맘껏 먹어요. 처음 아침을 안 먹으니 위산이 나와 좀 힘들기도 해서 과일 같은 걸 먹는 적응기를 거쳤는데, 지금은 오전에는 연한 커피 외엔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아침이나 저녁을 거르면 상대적으로 적게 먹고, 위와 장의 쉬는 시간을 늘릴 수 있지 않겠어요. 실제 같은 칼로리를 먹어도 그것을 세 끼가 아닌 두 끼로 나눠 먹으면 고혈압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에 덜 걸린다는 보고도 많아요. 동시에 속이 비워지면 정신도 맑아지기도 해요. 소화에 쓸 에너지가 뇌로 가는 것이겠죠. 시중에 심지어 의사들마저도 간헐적 단식에 대해 이러저런 의견을 내며 우려하는 의견도 있던데, 제 몸이 느끼는 바와 과학적 근거는 확실히 간헐적 단식이 좋다는 거예요."
- 건강과 노화가 의지 문제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이러저런 얘길 하면, '어휴, 그냥 이렇게 살고, 맛있는 거 다 먹고 약 먹을래'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맛있는 음식과 편리함을 피할 수 없는 거죠. 요새는 상품이 소비자를 편하게 해주는 데 초점을 맞추잖아요. 소비자는 이제 앉아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어요. 점점 더 움직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요.
예를 들어 달달한 디저트를 마음껏 먹고, 당뇨약을 먹어 혈당치를 정상치로 만든다 해보죠. 대체 그 사람이 건강한 건가요? 전혀요!! 그 약이 억지로 해결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수치는 실제 건강하고는 별 상관이 없어요. 혈당이 낮아졌다 하더라도 우리 몸에는 계속 쓰레기가 쌓여갈 거고 그 쓰레기는 언제가 어디론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점점 더 많은 약을 먹게 되고, 결국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이 짧아지는 거죠.
저는 우리 시대의 영양과 편리함이 임계점을 넘었다고 생각해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정도를 넘어 이제 해로운 수준이 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 수준은 계속 높아져가요. 자본의 속성이죠. 몸도 마음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사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요. 의지와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시대죠.
게다가 첨단 과학과 의학은 모든 생명의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 그 자체를 질병으로 여기고 약과 의료적 처치로 노화 자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혹하긴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어요. 모든 약은 긴 진화의 산물인 우리 몸의 정상적인 생명과정을 개입하고 차단하니까요.
우리가 좀더 노화를 늦추고 싶다거나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다면, 음식과 운동이라는 매우 상식적이고 친생명적인 방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것을 약으로 접근해 본다?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고령인구에서 5개 이상 약을 먹는 '다제약복용'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데, 그 근저에는 이런 과학전일주의적인 사고가 깔려 있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실제론, 건강수명이 줄고 있다는 거죠. 약을 많이 복용하는 경우 수명이 짧다는 구체적인 연구결과도 있으니까요.
운동으로 치면, 나이 들어서도 고강도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경우 40대의 근육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고강도 운동그룹의 '텔로미어'가 더 긴데, 이것은 세포 나이가 더 젊다는 것을 의미하죠. 일상에서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4.5년 더 오래 산다는 통계도 있고요. 꾸준히 공부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뇌의 기능도 더 오래 유지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뒷받침 하는 과학적 연구도 쌓여있어요. 스스로의 나이 듦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질병이냐, 자연스러운 생명과정이냐), 그 노화를 무엇으로 맞이할까(약 vs 운동과 음식) 하는 모든 것이 실은 자기 판단과 선택, 의지를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사증후군, 약 말고 음식과 운동으로 다스려야
-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량(26.5DDD)이 OECD 31개국 평균 사용량(18.3DDD)보다 크게 높습니다. 항생제 사용 기준을 낮추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항생제 사용량도 많지만, 더 심각한 문제점은 '광범위 항생제'를 많이 쓴다는 겁니다. 광범위 항생제를 쓴다는 것은 미생물을 싹 다 죽이겠다는 겁니다. '부분 항생제'는 항균력 작용을 할 수 있는 세균의 종류가 선택적이라 약발이 약할 수 있어요.
반면 무차별로 세균을 죽이는 광범위 항생제는 의사 입장에선 효과가 좋고, 안심할 수 있어 편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항생제 저항성은 더 높일 수 있어요. 항생제 저항성은 공공보건의 문제라 의사 개인의 책임이 아니지만, 항생제를 안 써서 문제가 되면 그건 의사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되죠. 그러니 쉽게 항생제, 그것도 광범위 항생제에 손이 가죠.
인류의 첫 항생제 페니실린을 세상에 내놓은 플레밍은 이미 1940년대에 <뉴욕타임스>를 통해 항생제를 남용할 경우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과 감염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길 수 있음을 경고했어요. 1940년대 중반부터 항생제가 대중화되면서 항생제 저항성은 실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플레밍의 경고대로 항생제 저항성은 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해진 상태고요.
최근 코로나처럼 인류가 감염병에 취약해진 것도 항생제 남용과 관계가 없을 수 없어요. 항생제 남용의 문제는 병원이나 의사의 책임과 양심에 맡겨둘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정부가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소비자에게도 항생제 사용의 부작용을 알려야 해요. 또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권을 높이는 것도 필요해요.
치과 역시 항생제 사용량이 많아요. 잇몸병 때문에 이를 빼는 경우, 환자의 면역력을 믿고 굳이 항생제를 안 먹어도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에요. 만약 간단한 발치 후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면, 감기나 피부의 상처, 심지어 칫솔질 후에도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되나요? 실제 제가 일하는 사과나무치과병원에서는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고 적용해 항생제 사용을 40% 넘게 줄여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항생제 안 써서 문제가 된 사례는 거의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