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산속 오두막집에서 본 밤풍경
송성영
2년 전, 그날
두 다리가 휘청거리고 심한 빈혈에 땅바닥이 어질어질 일어나 그대로 맥없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일어서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어? 어? 왜 이러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용을 써봤지만 그럴수록 숨구멍이 옥죄어 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속 오두막집, 산막(이후 산막)에는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속의 외딴집이라 크게 소리 쳐도 듣는 이 없지만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 큰 아들 인효에게 겨우 전화를 걸었습니다. 본래 혼자 생활하는데 때마침 그 전날, 서울을 오가며 음악활동을 하는 두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놀러 왔습니다.
밤새 모닥불 피우고 노래 부르며 신나게 놀다가 그 날 아침 겸 점심을 챙겨먹고 두 아들마저 읍내 버스터미널에 친구들 배웅 나갔던 것입니다. 다들 산막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내 몸은 멀쩡했습니다. 이틀 내내 마늘과 양파 심을 밭에 거름을 내고 두 아들과 친구들에게 뼈다귀감자탕까지 요리해 먹였을 정도였으니까요. 아, 그 전날 큼직한 거름 포대를 밭으로 옮길 때 빈혈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인효야... 어..얼릉 와봐야겠다..."
"아빠! 왜 그려! 왜 그러시는데!"
"내가.. 몸이... 이상 혀...하...하..어지러워...이.. 일어나질... 못하겠다..."
"아빠 금방 갈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19를 불러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 당장 두 아들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가쁜 숨이 더욱 더 심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든 옥죄어 오는 숨구멍을 열어보겠노라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숨구멍은 점점 막혀왔습니다. 순간, 숨 막힘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쥐약 먹은 개처럼 흙바닥에 엎드려 어떻게든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 살아보겠노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처참하게 죽는구나... '폼생폼사'의 인생,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대한의 숨을 끌어 모아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단전호흡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두세 차례의 들숨날숨조차 버텨내지 못하고 결가부좌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이 뇌리를 스치며 쓰러지는 순간, 하필이면 저만치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곶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