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산더미처럼 쌓인 1920년대 중반 군산 내항
동국사
일제강점기(1920년대) 군산 부청이 발행한 관제엽서 사진이다. 쌀 선적 작업이 한창인 내항 모습으로 군산세관 감시탑 망루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1923년 제작된 군산부 지도와 관련 서적에 따르면 당시 군산세관 본청 앞에 미곡검사소가 있었다. 기차 화물칸 옆 맞배지붕 건물은 화물창고이고, 그 너머에 철도 화물 취급소가 있었다.
조선 농민들의 한숨과 땀으로 얼룩진 쌀가마가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일제가 얼마나 많은 양의 쌀을 본토로 빼돌렸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군산역에서 내항까지 거리는 약 1.6km 철도 주변에는 가등, 조일, 조선 등 5만 석 이상 생산하는 대형 정미소들이 즐비하였다. 내항 부근엔 정미소 거리도 조성되어 있었다.
수면매립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쌀가마를 짊어진 짐꾼들이 분주히 오가는 고정 잔교만 보이고, 철도가 내항(지금의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 부근)에서 멈춰 있어 3차 축항공사 기공식(1926년 6월) 이전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내항 호안시설(석축 구조물: 국가등록문화재 제719-2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 시기 군산항은 반출품 중 쌀이 90% 이상 차지했다. 조선총독부 자료('군산항 수출공사 설명서')에 따르면 3차 축항공사 전 군산항 무역액은 5600만 원이었고, 화물량은 39만 1000톤에 이르러 대규모 축항이 불가피했다. 신문들도 군산항으로 유입되는 쌀이 150~200만 석에 달한다며 계선함(부잔교) 설치가 시급하다고 보도하였다.
선장은 있으되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배 '하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