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정 목사와 이야기하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2일 평화동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이 장관(왼쪽)이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를 방문하여 이홍정 목사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장관의 평화동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방문해 이홍정 총무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관계가 어느 시점에선가는 군사동맹과 냉전동맹을 탈피해서, 평화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지금의 한미동맹을 냉전동맹으로 규정하고 이를 평화동맹으로 발전시킬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동안 미국 국무부는 동맹국에서 나오는 이런 발언에 대해 웬만해선 논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의 소리>를 통해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신문의 5일 자 기사 "국무부 '미한동맹은 냉전동맹' 지적에 '안보협력 넘어선 확고한 유대관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의 소리>에 이런 의견을 보냈다.
"우리(한미)의 동맹과 우정은 안보 협력을 넘어선다. 그것은 경제, 에너지, 과학, 보건, 사이버 안보, 여성 권익 신장을 포함해 지역 및 글로벌 쟁점의 범주에 관한 공동 협력을 포괄한다."
이처럼 국무부는 '한미동맹이 공산권에 맞서 안보를 추구하는 냉전동맹을 넘어섰으며, 경제·에너지·과학·보건 및 사이버 안보와 여성 권익을 추구하는 평화적인 동맹을 지향한다'는 주장으로 이인영 발언을 반박했다.
미 국무부 이어... 국내 일부 언론도 이인영 발언 비판
비판은 미 국무부뿐 아니라 국내 언론에서도 나오고 있다. 7일 자 <문화일보> 사설 "통일장관 '한미동맹 해체론', 문 대통령 생각인가"는 한미동맹이 이미 냉전동맹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역대 정부를 거치며 지역 및 세계 안보와 평화 유지, 그리고 경제와 가치 동맹으로 진화"했으며 "따라서 이 장관 발언은 현 동맹의 본질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이라는 게 이 사설의 주장이다.
이 사설은 평화동맹이란 용어에도 거부감을 표시했다. "평화동맹은 더 문제다"라며 "한미동맹에서 상호방위 개념을 삭제하는 것으로, 북한 주장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는 까닭"이라면서 이인영의 발언을 북한과 연결시켰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이인영 '한미 냉전동맹 탈피해야'... 동맹 흔드는 철 지난 인식"도 마찬가지다. 이 사설은 "이 장관의 발언은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이 군사동맹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법치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 진화했음을 이 장관과 북한만 부인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사실, 모든 동맹은 평화를 지향한다. 제3국과 대결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동맹 내부적으로는 평화를 추구한다. 전쟁 중에 결성된 동맹도 마찬가지다. 전쟁 중의 이런 동맹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다.
동맹에는 한쪽 당사자(A)와 또 다른 당사자(B), 그리고 동맹의 적대 진영(C)이 관련돼 있다. 모든 동맹은 A·B 중의 한쪽 또는 A·B 양쪽의 평화를 목표로 한다. 동맹은 원칙상 A·B 양쪽의 평화를 지향하지만, A가 B를 C와의 대결로 내몰아 A 자신의 안전을 얻고자 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한 나라를 이용해 다른 나라를 제압한다) 같은 경우에는 A 한쪽만의 평화를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동맹이 어떤 형태로든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동맹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근거로 평화동맹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한미동맹은 평화동맹이다'라는 주장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그런 식으로 말하게 되면 모든 동맹이 평화동맹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평화적인지 아닌지는 그의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판단돼야 한다. 말로는 평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간 동맹도 마찬가지다. 평화동맹인지 아닌지는 동맹 당사국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슨 행동을 하는가를 통해 판단돼야 한다고 본다. 말로는 평화를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평화를 깨트리는 동맹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평화동맹? 말 아닌 행동으로 판단돼야... 미국은 어떤가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냉전체제에 발을 디디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미동맹이 그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동맹의 주도자인 미국의 태도 때문이다.
오늘날 '한반도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주로 남북한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미국은 평화협정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이다. 남북한은 당장에라도 평화체제로 가고자 하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백기 투항'을 사실상 요구하며 평화체제를 지연시키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은 한미동맹을 대북 제재에도 활용하고 있다. 현재 개성공단 및 금강산 사업 같은 남북 경협은 미국의 대북제재 때문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그런 압박정책으로 인해 인도적인 대북 지원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동맹을 주도하는 미국이 평화협정에 소극적일 뿐 아니라 대북 압박을 더욱더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 냉전체제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동맹을 냉전동맹으로 부를 수 없다면, 냉전동맹이란 표현은 사라져야 한다.
한미동맹이 평화동맹이 되려면, 말로만 평화를 추구할 게 아니라 평화로 가기 위한 실질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은 한미동맹을 대북 압박뿐 아니라 대중국 압박에까지 활용하려 하고 있다. 점점 더 평화와 거리가 먼 방향으로 한미동맹을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한국을 대중국 압박용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유인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각 협력체인 쿼드(Quad)에 한국과 뉴질랜드를 끌어들여 '쿼드 플러스'로 확대하는 구상을 추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