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로 인해 노조 전임 활동 중 교사에서 해고된 전희영 경남지부장.
이희훈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요 며칠 간 마음이 떨려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때도 그랬다. 2016년 1월 21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 2심이 있던 날, 너무도 추운 겨울이었다.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후 이에 대한 취소 소송을 내고, 두 번의 가처분 소송에서 이겼지만, 1심에서 패소했기에, 더군다나 박근혜 정권이 두 눈 시퍼렇게 살아 있는 때라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2심에서 패소하고 교육부 후속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5월 말, 6월 초, 전국 34명의 교사가 목숨과 같은 교단에서 쫓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교단에서 쫓겨난 2016년 6월 1일, 그날은 내 생일날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던 바로 그날, 나에게 생명과 같았던 참교단에서 쫓겨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 노조할 권리, 그 노동조합의 전임을 한다는 이유로 34명의 교사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렸다. 전교조 27살 생일을 고작 이틀 앞두고 전국의 수만의 조합원들은 동료가 해직되는 아픔을 함께 견뎌야 했던 아픈 나날들.
천만 촛불 항쟁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탄핵되어 물러나는 것도 내 두 눈으로 보았다. 드디어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회복할 날도, 돌아가고 싶은 교단으로 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남편은 나에게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바빠서 가기 힘들 테니, 혼자서 제주도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할 만큼, 법외노조 취소는 당연한 일이었다. 복직도 멀지 않은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그 희망 고문은 한 달, 두 달, 1년을 지나, 벌써 4년째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투쟁이란 투쟁은 다 해본 것 같다. 봄여름가을겨울 상관없이 수백 일의 청와대 철야농성이 지속되고, 이어지는 단식, 수없이 많은 삭발에, 오체투지, 전국 수천 교사들의 상경 투쟁, 민주당 점거 농성, 청와대 민원제출, 대법원 탄원서 작성까지 우리 6만 조합원들은 안 해본 투쟁이 없는 투쟁전문가가 되었다. 법외노조 취소 서명만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법외노조 취소 촉구 기자회견은 도대체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