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 구도를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동안 '중국 위협론'을 명분으로 세웠던 미국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중국 책임론'까지 덧붙이면서 더욱 더 세차게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전쟁을 계속 진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고자 홍콩 문제나 양안관계(중국-타이완)에 개입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을 갈라놓을 수 있는 남중국해(남지나해) 문제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관련된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하기 위한 압력도 강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양상
미국의 공세가 거친 데다가 미국이 세계 패권 국가이므로, 미국의 압박은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북한 같은 반미국가를 제외한 나라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당장에라도 축소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외형적 양상과 다소 결을 달리하는 또 다른 양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압박을 가하는 미국보다 압박을 받는 중국이 오히려 여유로워 보일 때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넓혀가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세계 지도국가의 지위는 점점 잃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상황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미군 유럽사령부뿐 아니라 미군 아프리카사령부까지 배치된 독일에서, 미국은 3만5000 병력의 4분의 1 이상인 95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또 무리하고 무례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통해 한국 같은 동맹국들과의 유대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덩달아 자국의 위신까지 떨어트리고 있다.
이란에 대한 유엔 제재를 복원하자는 미국의 제안 역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상임·비상임을 포함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3개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 발동에 반대했다.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은 나라는 단 둘이다. 그렇다고 찬성표가 둘인 것은 아니다. 비상임이사국인 도미니카가 아직까지 찬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안보리 이사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미국의 자격을 문제 삼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3년 뒤인 2018년에 파기했으므로,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더불어 이란 핵문제는 미국의 세계패권과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세계 최강인 미국이 이런 핵심 사안과 관련해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에 휩싸인 것은 미국의 지도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을 의미하는 현상이다.
수세에 몰려도 여유로운 중국
반면, 중국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의 파상 공세 때문에 수세에 몰린 데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국에서 전파됐기 때문에, 중국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중국은 세계지도국가의 위상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눈앞에 벌어진 당장의 위기뿐 아니라, 시야를 넓혀 장기적인 과제까지 염두에 두면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심리적 여유를 갖고 있다는 점은 코로나19까지 활용해 영향력 확장을 시도하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중국은 '우한 사태'가 진정되자마자 외국에 대한 의료 지원에 나섰다. 시진핑 주석이 외국 정상들을 상대로 코로나 방역에 관한 중국의 역할을 자임했고, 동남아·중동·유럽·남미 국가들을 상대로 마스크나 진단 용품 같은 의료용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의료진까지 파견하고 있다. 약점이 되고도 남을 만한 코로나19를 오히려 장점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의 해상 팽창을 견제하고 있다면, 중국은 육상과 해상에 걸쳐 '육상과 해상에 걸치는 비단길(실크로드)을 연계한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해 영향력 팽창을 시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에까지 코로나19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 실크로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그 점을 보여준다. <중국학 논총> 제35권에 실린 상하이 푸단대학(복단대학) 출신의 이창주 아주대 교수의 논문 '코로나 국면 하의 중국 일대일로 전략 분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초반기에 빠른 회복세를 달성하고 '건강 실크로드'와 지능화·자동화·비대면 형태의 세계화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단단한 동아시아 역내 밸류체인을 토대로 중국은 다시 기존의 일대일로로의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아무리 거대한 국가일지라도, 국정에 관한 최종 결정은 소수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기 상황에 처하면 국가 역시 개인과 비슷한 심리적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눈앞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다급한 처지가 되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 역시 평소에 추구했던 장기 과제는 멀리하고 당장의 문제 해결에 매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적지 않은 데다가 미국의 압박마저 거센 이 상황에서도, 중국은 패권국가가 되기 위한 평소의 목표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보다는 위축돼 있지만, 이 상황마저 일대일로 전략에 활용한다는 점은 중국 지도부가 상황을 대국적으로 인식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