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Forster)와 텅커리(Tuncurry)를 잇는 아름다운 다리, 1959년에 완공.
이강진
요즈음은 집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외출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극성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오늘 하루도 집에서만 지냈다. 밤늦게 포도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내일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술기운과 함께 올라온다. 무료함도 달래고 바닷바람도 쏘일 겸 가까운 포스터(Forster)에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포스터는 지역의 인구가 2만여 명 되는 동네다. 시드니에서 서너 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휴가철이 되면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우리집에서는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고, 큰 쇼핑센터가 있어 자주 찾는 동네다. 먼 곳에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관광지라고 하며 안내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하는 외출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마음껏 게으름 피우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며칠 만에 자동차 시동을 건다. 도로에는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다. 출근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 같은 교통 혼잡은 없다.
평소에 손님이 오면 자주 찾는 방파제와 선착장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텅커리(Tuncurry)라는 동네와 포스터를 연결하는 멋진 다리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짙은 청록색을 내뿜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시선을 붙잡던 그 모습 그대로다. 내가 본 바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가진 바다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방파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평일이지만 보트를 싣고 온 자동차들이 생각보다 많이 주차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서 바닷바람이나 쏘이며 지낼 생각이다. 요즈음은 특별히 하는 일없이 넋을 놓고 보낼 때가 잦다. 한국에 멍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멍때리기 대회에 나가면 일 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방파제를 따라 길게 조성한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다. 겨울 아침이지만 날씨는 봄이 찾아온 것처럼 따뜻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눈이 부시도록 맑은 하늘이다. 태양은 이미 대지를 데우고 있다. 사람들은 겨울답지 않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적당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긴다. 산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함께 걷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위를 보니 반려견도 없이 혼자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니, 멀리 한 사람 보인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보행기에 몸을 의지해 천천히 혼자 걷고 있다. 건강을 생각해 걷는 모습이다. 산책로에 설치한 운동 기구에서는 중년 남자가 반려견을 옆에 앉혀놓고 열심히 운동 중이다.
근처에 있는 벤치에서는 공사장 유니폼을 입은 두 건장한 사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간식을 즐기고 있다.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걷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뛰고 있다. 낚시대와 큰 바구니 통을 들고 방둑으로 향하는 낚시꾼의 가벼운 발걸음도 볼 수 있다. 방파제 옆 백사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수영하는 호주 사람들이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산책로가 끝난 방둑에 도착했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태평양 수평선이 펼쳐진다. 산책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방둑에서는 낚시꾼들이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진다. 낚시 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쉬는 사람도 있다. 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큰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평일이지만 주말처럼 직장에 다니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