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앞표지
국민서관
15일 비 오는 광복절 아침. 그림동화 <개똥이의 1945>를 다시 읽었다. 지난달 말에 처음 읽고 나서 세 번째 읽고 있다. 그림책을 세 번씩이나 읽고 있느냐고 갸웃거릴 분도 계실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림책일수록 곱씹어 읽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까지 두루 새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운동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평행봉에서 비롯한다.
어려서 개똥이라 불렸던 구순 할아버지는 말죽거리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평행봉을 쓰다듬으며 개똥이로 돌아간다.
1945년 우리말을 쓰다가 일본인 교장에게 혼찌검이 나는 개똥이와 동무들. 담임선생님은 이 녀석들은 데려가서 혼내겠다고 한다. 벌은 뒷산 나무를 베어다 평행봉 만들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평행봉을 만든 담임선생님, 평행봉에 올라가 멋지게 물구나무서기를 해 보인다. 개똥이와 아이들에게 평행봉을 배워 힘을 기르라고 하면서 용기는 힘에서 나온다고 북돋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아이들이 개똥이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이 붙었다. 지나가다 이를 본 교장 선생은 다짜고짜 개똥이 뺨을 후려친다. 분을 삭히지 못하는 개똥이에게 담임 선생님은 불의에 맞서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일러준다.
동화작가 권오준이 구순 아버지를 모시고 강연을 하러 다니다가 길어 올린 이야기로, 그저 스쳐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작은 힘들이 고여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개똥이는 마을마다 하나쯤 있는 아명(아이 때 불리는 이름)이다. 고종 임금도 개똥이였으며 황희 정승은 돼지였다. 의사가 적고 의료 혜택을 입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죽는 일이 잦았다. 어버이들은 아이를 하찮은 이름으로 불러야 옥황상제나 저승사자가 불쌍히 여겨 잡아가지 않는다면서 개똥이나 소똥이라 불렀다. 또 돼지처럼 아무것이나 잘 먹고 튼튼하게 자라라는 뜻을 담아 돼지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