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창립멤버이자 '위안부' 운동 1세대
참여사회
오는 8월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앞두고, '위안부' 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보기 위해 김혜원 회원과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 창립멤버이자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공동추진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위안부' 운동의 산증인인 그는 고령에도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지난 30년을 회고했다. 인터뷰는 6월 13일, 김혜원 회원 자택에서 이뤄졌다.
"수요집회 통해서 할머니들이 용기 얻어"
- 오랫동안 정대협과 정의연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맨 처음 '위안부' 운동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제가 활동하고 있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1970년대부터 관광기생 반대운동을 해온 단체였어요.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미국 포르노 잡지 <허슬러>가 한국이 매춘관광의 천국인 것처럼 기사를 낸 일이 있었어요. 그 잡지를 보고 매우 분개한 우리는 매춘관광 반대운동 차원에서 1988년 2월 12일 '정신대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의 조사단을 꾸려서 일본에 갔습니다. 국익을 명분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억압하는 행태의 뿌리가 실은 일제강점기 '위안부' 제도에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죠. 그것이 한국의 여성 단체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뛰어든 최초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 남자 피해자들은 "징용당했다", "죽을 고비 넘겼다" 등 증언을 하는데 가장 처참한 착취를 당했던 여성들은 하나도 증언을 못 하던 시기였어요. 그게 일본 정부에게는 얼마나 다행이었겠어요? 나는 그게 정말 분하더라고요. 가장 힘없는 식민지 백성들이 당했다는 것, 그중에서도 여성 피해자들은 숨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한 분노가 동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죠."
- 당시 조사단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15일 동안 일본 남단에서 북단까지 여행하면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어딜 가든 우리가 당했던 아픈 이야기가 수두룩했으니까요. 귀국해서 돌아오는 길에 참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식민지 백성 중에서도 가장 기층에 있는 사람들이 당했잖아요. 제가 그전까지 사형제 폐지 운동을 몇십 년 했는데 또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어느 러시아 시인의 문구가 떠올랐어요. '조국을 향해서 슬픔과 분노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슬픔과 분노를 끌어안고 가는 것이라는 깊은 자각을 하게 됐죠.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1992년 12월에 김학순 할머니와 일본 각지로 증언 집회를 다녔거든요. 어느 날 오사카였는지, 도쿄였는지 비가 참 많이 왔어요. 그래서 증언 집회도 못 가고 온종일 할머니랑 둘이 일본 여관 다다미방에 드러누워 뒹굴뒹굴하면서 내가 "할머니는 평양에서 태어나서 끌려갔다는데 왜 전라도 말투예요?"라고 물었더니 거기에 또 할머니가 한국 남자 때문에 해남에 가서 힘들게 산 아픈 과거가 숨겨져 있더라고. 그때 그 할머니의 애절한 이야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아래 수요집회)가 벌써 28년째 이어지고 있어요. 처음 수요집회가 열리던 날을 기억하시는지요. 선생님께 수요집회는 어떤 의미일까요?
"수요집회가 없었다면 과연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 억울한 심정을 어떤 통로를 통해서 시민들과 교감할 수 있었을까요? 할머니들이 처음 집회 나오셨을 때는 창피하다고 마스크 쓰고 모자 쓰고 나오셨어요. 그런데 나와서 보니까 자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걸 알고 용기를 얻었고 이제는 "부끄러운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다" 하시면서 일본 대사관을 향해 소리칠 수 있게 됐죠. 그러한 의식 성장의 동력을 어디서 얻었냐 하면, 수요집회에서 얻은 거예요.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예요. 수요집회라는 공간을 통해서 피해자들과 만나고 시민들과도 만나고 국제적인 연대가 그 안에서 이뤄졌잖아요. 교육이 이뤄지고 연대의 힘을 얻고 그러면서 이 운동이 성장해 왔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