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자료사진)
워싱턴 AP=연합뉴스
사실 그 자신도 우편 투표에 결정적이거나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은 언론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언론은 논쟁거리를 바란다. 그래서 트럼프는 언론에 먹이를 던져주되 재선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우편 투표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일 뿐 정작 중요한 코로나19나 유색인종의 차별, 여성 차별과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술적 문제와 인간적 실수로 일부 우편 투표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무시할 정도이고 보완이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줄기차게 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우편 투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트럼프는 만들고자 한다.
사실 2020년 미국 대선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선거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당대회도 군중 집회도 토론회도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대선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민주주의 잔치이다. 그러나 이번 잔치에는 손님이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특종에 목말라하는 언론으로서는, 트럼프가 던져주는 미끼를 물게 될 확률이 상당하다.
2016년 대선 결과를 복기해보면, 트럼프 전략이 더 잘 보인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 88%가 클린턴을 지지한 데 비해 8%만이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백인 유권자의 59%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37%가 클린턴을 지지했다. 여성 유권자 가운데 54%가 클린턴을 지지한 데 비해 42%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남성의 53%는 당시 클린턴을 지지했고 41%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백인 남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덕분이었다. 2016년 대선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백인의 67%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클린턴은 28%만 지지했다(
퓨 리서치 센터, 관련 자료보기).
이를 잘 알고 있는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도 유색인종과 여성의 표는 아예 포기하고 백인 남성의 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던 차에 조 바이든이 내린 카머라 해리스라는 선택은, 현재 공화당 내부에서 결집력이 어느 정도 약화해 가던 백인 남성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트럼프를 선택하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인종차별 금지나 여성의 권리향상에 큰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자신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 바이든 함께 뛰는 해리스는 누구
1964년 출생, 55세인 카머라 해리스는 미국에서 소수 인종 출신의 직업여성으로서 전형적인 성공 모델이 된 사람이다. 개인적 이력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강한 '전사'인지를 알 수 있다. 50세가 될 때까지 정치적 출세 가도를 달리며 독신으로 살아가던 카머라 해리스는 2014년 변호사로 일하는 더글러스 엠호프(Douglas C. Emhoff, 1964)와 혼인했다. 더글러스 엠호프는 재혼으로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으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카머라 해리스의 어머니 시야말라 고팔란(Shyamala Gopalan, 1938~2009)은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태어나 인도 델리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약관 25세에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일해온 지식인이었다. 고팔란은 자메이카 출신으로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도널드 해리스(Donald Harris)와 결혼했으나 카머라 해리스가 7살 때 이혼하고는 1971년부터 두 딸을 홀로 키워낸 이른바 싱글맘이다.
카머라 해리스는 2019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며 마리화나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자신이 대학생 시절에 마약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 소식을 듣고 카머라 해리스의 아버지는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다.
간단히 살펴본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카머라 해리스는 매우 진보적이며 성평등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다. 소수인종 여성으로서 검사, 주법무장관, 상원의원 등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는 흔히 '여자 오바마'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여성과 유색인종의 희망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 특히 정계에서 유색인종과 여성은 아직도 소수자로 여겨진다. 트럼프는 미국 정계와 언론에서는 이단아로 비치지만, 그 자신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왔고 재력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정통 WASP(와스프, 흔히 미국사회 주류 지배 계급을 일컫는 말)는 아니지만, 미국으로 이민 온 지 3대 만에 자수성가해 미국의 주류(establishment)에 당당히 속한 집안의 인물이다.
그런 트럼프는 물론, 공화당 부통령 펜스와도 여러 면에서 카머라 해리스는 극명한 대척점에 서 있다. 카머라 해리스가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선택된 것으로 이제 2020년 미국 대선은 단순히 민주당-공화당 대결이 아니라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극명한 대결 구도를 이루게 됐다.
사실 2016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부와 명예를 거머쥔 미국 최고의 엘리트로서,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이미지로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 세력인 소수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그 당시 클린턴이 싫어서 할 수 없이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사람들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동안 바이든은 늘 자녀들 의견을 존중하는 자상한 아버지 모습을 보였지만, 트럼프는 전형적인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 왔다.
민주당 해리스 vs. 공화당 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