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철거된 자리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들을 과거 독일 방문 당시 찍었다. 여기에는 베릴린 장벽을 넘다가 목숨을 잃은 동독 주민의 이름과 사진이 십자가마다 표시돼 있었다.
정만진
독일 수도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서독 지역과 동독 지역으로 양분되었다. 그 이후 동독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일이 이어졌다. 동독은 1961년 8월 13일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전날 자정부터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경을 폐쇄한 동독은 밤새 철조망으로 서베를린을 에워쌌다.
철조망 장벽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사이에 43km, 서베를린과 그 외 동독 지역 사이에 156km 길이로 설치되었다. 이 철조망 장벽은 1965년 다시 콘크리트 장벽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장벽에는 감시탑 116개소가 설치되어 접근하는 사람들을 철통같이 막았다. 국경을 통과할 수 있는 지점은 아홉 곳에 개설된 검문소뿐이었다.
주민들의 서독 탈출을 막으려고 장벽 설치한 동독의 정치세력
서독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을 막는 한편, 서베를린을 고립시키려는 동독 정치 권력의 조치는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동독 주민들은 월장(담 넘기)에 목숨을 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독일 체크 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박물관의 2010년 8월 11일 발표에 따르면, 1961년부터 장벽이 무너지는 1989년까지 1393명이나 되는 동독 주민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매주 한 사람이 장벽을 넘으려다 총살된 것이다. 이는 탈출을 시도한 동독 주민이 얼마나 많았으며, 동독 주민들의 민심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증언해주는 숫자다.
그렇게 탈출 시도가 계속되던 중, 이윽고 1989년 9월 들어 1만 3천여 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동독 주민들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동독 주민들은 현지의 서독 대사관을 점거했다. 결국 그해 11월 9일 밤 베를린 장벽은 장벽의 기능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