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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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님께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의 연구까지 인용하며, '계층간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애석해하셨습니다. 대학 진학 여부가 이미 취학 전에 결정된다면서, 고장이 난 공교육 시스템을 질타하셨습니다. 거칠게 말해서, 그건 가정과 사회가 '싸질러놓은 ×'을 왜 제대로 치우지 못하느냐고 되레 학교를 욕하는 꼴입니다.
끊어진 사다리를 이어야 한다면서, 수월성 교육을 주장하는 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특목고, 자사고, 자공고, 일반고, 특성화고 등으로 서열화시킨 '고교 다양화'와 우열반으로 귀결된 '수준별 수업'은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증명됐습니다. 의원님께서 이를 모르는 척 수월성 교육을 언급한 건, 아마도 통합당의 당론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칸트의 통찰인즉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데, 굳이 '수포자' 양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애먼 교사 집단을 탓할 게 아니라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감히 자부하건대,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용과 가재, 붕어, 개구리, 그 무엇이 됐든 자존감이 높고 공감 능력을 갖춘 시민으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권능을 어느 누가 폄훼하겠습니까. 다만, 정부가 전문가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고 타박하셨듯이, 부디 의원님께서도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국회에서 학교를 향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우나 고우나 공교육 개혁의 주체는 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백하건대, 2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한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큰 차를 타려 하고, 넓은 집을 꿈꾸고, 명품에 집착할까? 아이들은 왜 모두 대학에 가려고 하고, 서울에서만 살고 싶어 할까? 지금껏 이 '우문'에 답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건 상식이자 통념이며 의심할 여지 없는 우리 사회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의원님이 제안한 대로 공교육이 바뀌면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요? 큰 차와 넓은 집, 명품, 대학과 서울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을 그저 본능이라고 내버려 두면, 우리 교육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다'는 당위조차, 되레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하는 의원님께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인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과도한 욕망을 제어하도록 이끄는 교육'만이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믿습니다.
눈여겨 보겠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대학원 근처에도 못 가본 일개 지방의 고등학교 교사가 감히 미국 명문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의원님과 말을 섞는다는 게 불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교육에 관해 의원님과 끝장 토론을 벌여보고 싶습니다. 차기 서울특별시장과 교육부장관감이라며 찬사를 한 몸에 받고 계신 의원님께 직접 묻고 듣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수요에 맞춰 대학 정원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면서, 왜 최근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으신지. 또 그러잖아도 수요가 없어 인문학이 대학에서 퇴출되는 현실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여쭙고 싶습니다. 미국 쪽 통계에 근거한 주장 말고 유럽 등으로 대조군을 넓힐 의향은 없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까발려진 지금 미국의 현실을 보건대, 미국 교육을 모범 삼는다는 게 여간 찝찝한 일이 아닙니다.
괜히 오해하실까봐 덧붙입니다만, 저는 통합당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자도 아닙니다. 지금껏 정당 투표에서 민주당을 선택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출마한 후보자의 면면을 놓고 보면, 통합당과 민주당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태반입니다. 누구의 표현을 패러디하자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오로지 정책만 따져볼 뿐입니다'.
비록 통합당에 적을 뒀다고 해도 의원님이 발의한 정책을 눈여겨 보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공교육 개혁에 이바지할 거라는 확신이 서면, 동료 교사와 함께 앞장서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그러자면 공교육을 향한 '전국민 가재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조롱부터 거둬주시는 게 순서일 겁니다.
촉망받는 초선으로서, 부디 윤희숙 의원님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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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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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님, '가재 조롱'을 거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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