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원하는 최신 핸드폰 구매는 명백하게 과도한 지출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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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원하는 폰은 명백히 과도한 지출임을 나는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딸은 그때까지(중학교 2학년) 중고폰을 사용해 왔으니 이젠 자신이 갖고 싶은 새 핸드폰을 가질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열을 올렸다.
모녀 사이의 팽팽한 의견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 당시 딸과 같은 방을 썼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서로 말을 안 하고, 밤이 되면 벽 쪽으로 고개 돌리고 훌쩍거리는 딸을 외면하는 게 나도 마음 쓰렸지만, 이번만큼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처음이었다. 자랄 만큼 자랐는데도 여전히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딸의 태도에 나 역시 이만저만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그간 웬만하면 딸의 욕구를 쉽게 허용해왔던 나의 불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 불찰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모녀가 내뿜는 한기에 숨쉬기조차 편치 않을 정도로 방이 꽁꽁 얼어가던 냉전 8일차 즈음, 드디어 딸이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다. 오랫동안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걸리면서도 결국엔 고집을 꺾어준 딸이 고마웠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좀 더 엄마의 사정을 살펴준달까, 무턱대고 제 욕구 충족만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게 된 것 같다. 원하는 게 생기면 용돈을 모아 스스로 마련하기도 하고 말이다. 여전히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 앞으로 언제 또 엄청난 요구를 들이밀지 모를 일이지만, 이제는 사고 싶은 게 있어도 조금 조심스럽게 따져보게 된 것만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여긴다.
영끌해서 모은 용돈으로 고가 브랜드 제품 구입
그런데 유행하는 제품 또는 고가품을 구매하길 원하는 것은 비단 우리 딸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보다.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원하는 걸 구매하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몇 달간의 고생스러운 알바도 무릅쓴다는 기사를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딸보다 세 살 위인 아들에게 듣자 하니, 같은 반 아이 한 명은 용돈 모으기를 너무 과하게 해서 자기가 봐도 걱정될 정도란다.
공부시간이 부족해 알바는 못하지만, 버스값을 아끼느라 등하교를 뛰어서 하고, 학원 끝나고 독서실에 가기 전에 밖에서 해결해야 할 저녁식사도 굳이 굶어가며 용돈을 모은단다. 역시나 이유는 바로 고가의 운동화와 T셔츠, 바지 등을 사기 위해서라고 하니, 참 들으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게 안쓰러웠다.
그렇게 모은 용돈으로 두어 달에 한 번씩 학교 친구들에게 산 옷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 돈으로 차라리 밥을 사 먹으라는 아들의 조언은 하나마나란다. 듣는 나도 그 아이의 건강과 과한 용돈 모으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염려가 되었더랬다.
자식들이 뭔가 필요하다고, 갖고 싶다고 하는 욕구를 부모로서 못 들은 척 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원하는 걸 그때그때 손에 넣어 주는 것이 그들에게 꼭 이로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제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으면,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거나 이용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전히 심심찮게 들리는 ○○셔틀이나 집단폭행 같은 청소년 관련 기사들을 봐도 그렇다.
아이들이 이렇게 되어가는 건 어쩌면 나를 비롯한 부모들 탓인지도 모른다. 비자발적으로 학교와 학원, 독서실에만 매여 살게 된 이 청춘들이 잠시 잠깐 틈 날 때마다 마음 쉬일 곳은, 그저 즉각적으로 접속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세계뿐이니 말이다. 결국 웹툰과 페이스북, 동영상 같은, 눈으로 훔쳐보는 그 세계가 전해주는 이미지와 상품들만을 선망하게 되고 탐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딸과의 물건 구매를 둔 밀당이 언제나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딸이 꼭 하나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물건이 주는 기쁨도 살아가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물건을 사지 않고도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찾아보면 늘 주변에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
그러자면 우선 나부터 딸이 그런 일들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부터 제 맘대로 쓸 수 있게 해 줘야겠다. 핸드폰 냉전 못지않게 모녀간에 티격태격할게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나는 딸을 믿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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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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