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에서 본 디오니소스 극장 터
정만진
전화를 "벨(bell)"이라고 하는 것은 그레이엄 벨이 1876년 누구보다도 먼저 전화 발명 특허를 출원했기 때문이다. 1901년부터 세계의 과학자, 문학가, 경제학자, 평화 운동가 등에게 "노벨(nobel)상"이 수여되는 것은 과학의 진보와 세계 평화를 염원한 알프레드 노벨이 자신의 유산을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 물체는 항상 일직선을 따라 균일한 속력으로 움직인다는 '관성의 법칙'을 달리 "갈릴레이(Galilei)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갈릴레이의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라톤"보다 "휘디피데스"에 훨씬 더 사람을 존중하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휘디피데스" 대신 "마라톤"이라는 이름이 채택된 데에는 비인간적 인식이 크게 한몫했을 듯하다. '인간 승리' 휘디피데스 대신 '그리스가 승리한 장소' 마라톤을 내세움으로써 고대사회 때부터 그리스가 세계사의 주요 국가였다는 사실을 새삼 부각하려는 의도가 작용되었을 듯하다는 짐작이다. 개인이 하는 운동을 권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 끝에 42.195km를 달리는 운동의 이름이 "휘디피데스"가 아니라 "마라톤"이 된 게 아닌가 추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이름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인간존중이다
이제 사람들이 철인 3종 경기에 환호를 보내는 이유가 대략 가늠이 된다. 비록 휘디피데스는 세계사에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새기지 못했지만, 그는 당대의 영웅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철인(鐵人, Ironman)들의 향연을 통해 휘디피데스의 환생을 본다. 철인 경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는 평온하게 다스려진다.
본인이 직접 레이스에 뛰어든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마라톤을 해야 하는 전체 거리를 보면 끔찍하다. 자칫 함부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가는 히디피데스처럼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그때 누군가가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세상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그리 많지 않은 성금을 내면 된다. 그 정도도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