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구룡폭포 오른쪽 동그라미 표시가 된 곳에 김규진의 글씨 '彌勒佛'이 새겨져 있다. 김규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 '천연당'을 서울 천연동(현 소공동)에 연 인물로, 사진가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나라 안 최고의 서화가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정만진
1864년에 태어난 황철은 사진가·서화가·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리로 역사에 남아 있다. 그는 18세인 1882년 사업차 들른 상해에서 중국인으로부터 사진 촬영술을 익혔는데, 그해 말 사진 기계를 사 들고 귀국했다. 이듬해인 1883년 황철의 안국동 자택 서재는 촬영소로 개조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황철의 촬영소는 무참히 부서졌다. 군중들이 난입해 '개화파'의 촬영소 건물을 때려부수고, 사진 기자재도 모두 파괴해버렸다. 그래도 황철은 1886년 다시 촬영소를 열었다.
우리나라에 사진기를 최초로 도입한 황철
최초로 사진기를 국내에 도입한 황철은 궁궐 등을 촬영한 기록사진을 많이 남겼다. 그가 남긴 80여 점의 기록사진은 개화기 사회상을 생생히 전해주는 역사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궁궐 등 기록사진을 다수 찍은 까닭에 간첩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황철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주는 관직을 모두 거부했다. 사진가 황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우리나라 최초로 사진을 도입했고, 중요한 기록사진을 다수 촬영하여 그 시대를 조감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남겼다.(《두산백과》)'로 요약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을 연 김규진
김규진은 황철 이후 우리나라 사진의 역사를 증언하는 인물이다. 대구가 배출한 유명한 사진작가 최계복이 일본으로 유학을 간 1907년에 김규진은 이미 서울 천연동(현 소공동)에 '천연당'이라는 이름의 사진관을 열었다. 1907년 8월 17일에 개업을 했으니 최계복이 1933년에 '최계복 사진기점'을 연 데 비하면 26년이나 앞선다.
김규진은 황철보다 4년 후인 1868년에 태어났다. 황철에 비해 불과 4년 뒤에 출생한 김규진이 황철의 동년배가 아니라 차세대 사진가로 일컬어지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황철이 18세인 1882년 사진과 처음 접한 데 견줘 김규진은 39세인 1907년에야 사진에 입문했다. 나이는 4년 차이가 나지만 사진계에 발을 디딘 시기는 25년이나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