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숙명여대 청소 경비 노동자 집회 당시 만년설 학생이 제작한 피켓
나수빈
- 대학 사업장에서의 투쟁은 원청 숙명여자대학교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만년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숙명여대에 만년설은 어떻게 맞서 싸웠나요?
"만년설은 투쟁이 '그들만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학우들에게 알리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어요. 집회 때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카드 뉴스를 제작하여 협상 및 투쟁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어요. 여러 언론 인터뷰도 했고요.
그때부터 학교가 만년설을 의식했고, 만년설 회의 현장을 몰래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기도 했어요. 2018년에는 학교-노동자 협상 자리에 만년설이 함께 하기도 했어요. 노동자분들이 만년설 학생들도 들여보내 달라고 하셨고, 저와 두 명의 학생이 함께 들어가서 학교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직접 보았던 기억이 나요."
- 만년설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을 텐데,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2018년에 <숙명여대 미화∙경비 노동자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어요. 인권 가이드라인은 노동자와 학생이 평등한 동지로서 연대하려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한 책자예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나이 권력 파트로 구성돼 여러 혐오 발언, 예를 들면 "여대 나오면 시집 잘 가겠다", "학생, 남자친구 있어?"와 같은 발언과 반말을 왜 하면 안 되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어요. 제작을 완료하고 배포하기 전, 책자 실물을 처음 봤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노동자분들이 참고하셔도 좋을 거로 생각했고, 그게 지금 <나침반>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 것 같아요."
-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살아온 환경과 생각이 다르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갈등이 생기기도 했어요. 저희 학교에는 외부인이 침입하여 학생들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밤에 외부인이 학교에 출입하면 학생들은 경비실에 신고하는데, 경비노동자분들은 학생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까짓 것 가지고 왜 그러냐"라는 말을 직접 들은 학생도 있다고 해요. 또 야간 노동 특성상 육체 피로가 엄청나잖아요. 그러다 보니 밤에 경비노동자분이 초소에서 자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어요. 그러니까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쏟아지고, 경비노동자분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퍼졌어요.
그 시기에 만년설 연대회원 한 분이 가입하시면서 메시지를 남기셨어요. '자신은 학교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인데 우리 학교 경비 노동자분들이 일하고 있는 내게 반말과 불쾌한 언행을 한 적이 있다. 나는 2016년도 숙대 노동자 해고 저지 연대 성명에 참여했고, 나 역시 학생이자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를 동지로 대하지 않는 노동자분들이 계셔서 안타깝고 속상하다. 만년설이 학생들과 노동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점을 계속해서 고민하며 학내 분위기 개선을 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면서 만년설 회비는 그 해의 최저시급인데, 본인의 하루 치 임금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하셨어요. 이에 정말 감동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도 다르고, 거기서 비롯된 오해가 학생과 노동자가 연대하기 어려운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연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통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서 노동자분들에게 학생들이 불편해하는 말들, 무엇이 혐오 발언이고,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인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알려드리기로 한 거예요."
- 옛날의 노학연대는 엘리트 지식인인 학생들이 불쌍한 노동자를 도와준다는 시혜적인 관점에서 운동했다면, 만년설이 인권 가이드라인을 제작하여 배포한 것은 학생과 노동자가 평등한 주체임을 강조하며, 노동자에게 제안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활동인 것 같아요. 그런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지속 가능하고 평등한 연대를 고민하면서예요.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노동자가 서로를 평등한 주체로 보는 것이 연대의 시작이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니까요. 학교 안에서 계속해서 투쟁하려면 많은 학생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데,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혐오 발언, 이로 형성된 학내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는 연대를 막는 큰 장애물이었어요. 만년설로 활동하며 자주 노동자분들을 만났던 저도 반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어요. 평등한 동지로서 연대하기 위해서, 안 할 수가 없는 활동이었죠. (웃음)."
- 만년설이 제작한 인권 가이드라인은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노동자분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변했어요. 만년설로 활동하며 만난 노동자분들이 예전에는 저희한테 '예쁘고 착한 학생들'이라며 고마워하셨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으시고, 학생들 생각이 어떤지 많이 물어보시기도 해요. 그런 부분에서 서로서로 동지로 대하고 있음을 느껴요."
학생들을 설득하는 게 아직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