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연구소 소장 하승우하승우 소장은 탈수도권을 선언하며 옥천군에 자리를 잡은 지 9년째다. 옥천을 비롯한 풀뿌리 자치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가고 있다.
하승우
주민이 주도하는 운동? 주민이 사라지는 지방
한국에서 몇 명 되지 않는 아나키스트를 자임하는 그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주민자치, 생태·환경, 정당정치, 직접 행동 등 다방면의 연구와 실천을 해온 전문가이자 활동가다. '아나키스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말해주듯 그는 항상 삐딱한 시선으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어쩌면 아무 연고도 없었던 그의 옥천행도 이런 삐딱함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고교시절부터 남다른 삐딱함을 뽐냈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아나키즘, 비판사회이론, 풀뿌리 정치 등 주류와는 결이 다른 정치학 연구를 했다. 그러던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으로 재창립)와 만나며 이론과 실천을 접목할 기회를 잡았다. 당시 시민자치정책센터가 과천에서 연 '시민자치학교'의 수강생들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천해보자며 '보육조례개정을 위한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다.
"과천 보육조례 주민발의는 주민들이 온전히 준비하고 실행한 주민 주도적 운동이었어요. 풀뿌리 활동가들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주도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했어요. 결국 이 힘이 시의회를 움직여서 주민들이 요구한 내용 그대로 통과시켰죠. 탄력이 한 번 붙으니까 다른 주민자치 운동으로 계속 확장되고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에 영향을 미쳤어요."
누군가 사회적 약자 대신 운동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의 풀뿌리가 직접 일어나 실행하는 운동. 이런 형태는 당시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각광받으며 몸집을 불리던 시민운동과도 다른 것이었다. 과천에서의 경험으로 그토록 꿈꾸던 풀뿌리들의 직접 정치, 아나키스트적 이상이 실현될 것만 같았다.
풀뿌리 지역정치에 대한 관심은 2006년 개발 바람이 사라지지 않는 지리산에서 주민 스스로 공부하고 대안을 찾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강수돌, 우석훈, 구자인, 이호 등 저명한 풀뿌리 연구자, 활동가들과 5개 시·군 주민들이 구례에 모였다. 이들은 2, 3주마다 같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단순한 개발 반대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풀뿌리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정작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주민들과 연구자, 활동가들이 함께 공부하고 대안을 찾아 나가면서 '주민 주도가 맞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역에 가면 주민은 사라지고 있고, 같이 논의할 연구자나 활동가를 찾기조차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서울에 몰려 있는 활동가나 연구자들이 지방으로 이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서울을 떠나 비수도권으로 이주해야 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이율배반의 도시, 서울
도시에 대한 온갖 정이 다 떨어져도 대부분의 사람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십중팔구 '돈', 즉 직장 때문이다. 그도 그랬다. 지방 이주를 결행하려 해도 항상 밥벌이가 발목을 잡았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교수로 일하다 모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르치는 과정이 만들어지자 객원 교수로 참여했다. 그러나 학생에게 가르치는 내용과 그가 마주한 현실은 너무 차이가 컸다.
"학생들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강의하는 것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대학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요. 학생들에게는 연대와 시민성을 가르치면서 평가는 심지어 팀별 수업도 경쟁에 기초한 상대평가로 해요. 팀 간의 경쟁만이 아니라 팀 내에서도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거죠. 또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가르치면서 교수들은 객원 교수, 계약직 같은 방식으로 뽑아요. 저조차도 언제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을지 알 수 없었고... 시민교육이라는 것이 그냥 그럴듯한 상품 포장지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결국 1년의 계약 기간을 채우고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 직장도 집도. 마음의 결심이 서자,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두 그룹이 의기투합 했다. 하나는 자신과 같이 풀뿌리 자치 운동에 관심 많던 사람들의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운동을 하는 아내의 활동가 그룹이었다. 두 그룹은 함께 귀촌을 공부하면서 살 곳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물건도 너무 고르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다 했던가? 어디에 둥지를 틀지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어디로 갈지 결정을 못해서 귀촌에 성공한 분들에게 의견을 구하니, '평생 살집'을 찾지 말고 '잠시 쉬어 갈 집'을 고르라고 조언해 주더라고요. 저에게 쉬어갈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니까 서울에서 집 보러 다니던 곳 중간 즈음에 위치한 옥천이었어요. 잠시 머문다 생각하고 결정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