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스쿨버스를 '달리는 빨간 신호등'이라고 일컫는 데는 한치의 과장도 없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의 승하차를 위해 정차할 때는 3가지 안전장치가 동시에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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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나 스쿨버스 관련 사고율이 낮을 뿐더러 어린이의 심각한 상해나 사망사건은 매우 드물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오랜 세월 공고히 자리 잡아온 제도와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민의식이다.
캐나다 스쿨버스를 '달리는 빨간 신호등'이라고 일컫는 데는 한치의 과장도 없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의 승하차를 위해 정차할 때는 3가지 안전장치가 동시에 작동한다. 우선 버스 앞뒷면 총 4개의 경광등이 번쩍인다. 운전사 쪽 버스 측면에 붙어 있는 빨간색 '정지' 표지판이 열린다. 버스 앞 하단에 있는 '안전바'도 날개처럼 길게 펼쳐진다.
'안전바'는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 뒤에서 차가 올 경우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은 안전바가 펼쳐진 만큼 버스와 떨어져서 도로를 건너게 되고 뒤에서 오는 운전자에게 더 잘 보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보행 중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안전바의 존재 이유가 더 확실해진다.
스쿨버스가 경광등을 켜고 정차하면, 뒤따라 주행하던 차는 20m 이상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선다. 길 건너 보행하는 아이들 보호를 위해 반대 차선의 차들도 반드시 정지해야 한다. 이제 아이들은 안전히 등교 혹은 귀가할 만반의 준비가 된다. (만 10세 미만 정도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보호자가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다시 학교로 데려간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스쿨버스 정차 시 주행을 계속하거나 스쿨버스를 추월하면 400달러(약 35만 원)에서 2천 달러(약 180만 원)까지의 벌금뿐 아니라 벌점 6점까지 부과된다. 사고 현장 이탈 시 벌점이 7점으로 가장 높고, 총 15점이면 30일 면허정지가 됨을 감안하면, 6점은 매우 높은 벌점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요 위반사항으로 취급돼 자동차 보험료 또한 무섭게 치솟는다. 5년 이내 추가 적발 시 1천 달러(약 89만 원)에서 4천 달러(약 355만 원)까지의 벌금에 벌점 6점이 부과된다. 이렇다 보니 캐나다 운전자들은 경찰차보다 스쿨버스를 더 무서워한다는 말 역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스쿨버스는 명실공히 도로 위 0순위다.
온타리오주만 해도 약 1만 8천 대의 스쿨버스가 매일 2백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므로, 등하교 시간에 스쿨버스 주변에 차들이 일시에 늘어서는 것은 흔하게 펼쳐지는 광경이다. 하지만 경적을 울린다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15년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높은 시민의식이 엄격한 제도를 만들어낸 걸까, 제도가 시민의식을 높인 걸까. 중요한 것은 제도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민의식이 '어린이 교통안전 선진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캐나다 스쿨버스는 별도로 마련된 차대 및 몸체 제작 기준과 안전장치 요건에 철저히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모든 스쿨버스가 동일한 내부와 외관을 지닌다. 스쿨버스는 각 학교가 아닌 지역 교육청이 스쿨버스 전문 운행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재정은 교육부에서 충당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정부와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인 셈이다.
캐나다 스쿨버스는 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공기관 학생들이 이용하지만, 한국의 어린이 통학차량은 공공 어린이집 외에도 학원 같은 사설 교육기관에서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스쿨버스 일괄제작이나 공공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모든 통학차량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9년 4월 29일 통과한 '태호·유찬이법'은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정의를 '어린이들이 탑승하는 모든 통학차량'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어린이 통학 차량의 안전 규정이 더 강화됐지만, 사각지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법안 통과 후 당시 이정미 의원실의 정송도 노동정책보좌관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법이 교육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법 밖에 있는 다른 교육 시설이 또 생기면 사각지대는 계속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신고제가 의무화됐음에도 미등록 상태로 운전하다가 적발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만큼, 미등록 차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은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
현재 안전장치 설치의 재정적 부담이 운전자 개인에게 지워져 있기 때문에, 설치비 절감을 위해 불법 개조업자를 찾는 일이 많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또다시 아이들의 안전이 목적 아닌 담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어린이 통학버스의 안전 확인 장치 설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과 유치원 외 어린이 대상 학원들은 민간 영역이라는 이유로 제외된 상태다. 각 지자체에서 지원하곤 있으나 해당 업체에 대한 설치비 역시 정부가 보조해 어린이 통학차량 관리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이 더 안전해질 수 있다.
충분한 지식과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