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60주년을 맞아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최 '국민주권실천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
권우성
[광장에 나온 판결]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촛불집회 주최 측 상대 손해배상소송 패소판결 : 대법원 제3부 재판장 노태악 대법관, 주심 민유숙 대법관, 김재형 · 이동원 대법관, 2016다39125
"전세금 안 뺏기게 되었네요."
17명에 달하는 광우병 촛불 손배사건 피고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말이다. 피고의 일원이었던 필자의 명의로 된 연립주택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자산이 거의 없는 한국진보연대의 경우는 강제집행을 당해도 집행불능 상태가 되겠지만, 회관이 있는 참여연대의 경우는 자칫 회관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광우병 촛불에 대한 국가(대한민국)의 손해배상청구가 대법원에서 청구기각으로 확정 판결됐다. 2008년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항쟁'(아래 "광우병 촛불"이라 함) 당시 경찰(대한민국)이 촛불집회로 인해 경찰장비 등이 파손됐고 또 의경들이 다쳤다면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관련 간부들을 상대로 무려 5억1천여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였는데, 지난 7월 9일 대법원 민사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 2016다39125)에서 원고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1심(2013.10.31. 선고 서울중앙지법 2008가합74845, 윤종구 부장판사, 서전교 판사, 백지예 판사)에서도 청구기각, 2심(2016.8.19.선고 서울고법 2013나72574, 김상환 부장판사, 이영창 판사, 조찬령 판사)에서도 항소 기각된 후 이번에 대법원에서도 상고 기각됐는데, 소 제기 이후 12년 만에 비로소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공모 또는 고의를 원인으로 한 손배청구에 관하여는... 피고들이 집회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행위에 직접 가담하였거나 폭력 시위자를 지휘하였다"라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또 "피고들이 폭력시위자와 공모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도 증거가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 "과실에 의한 방조를 원인으로 한 손배청구에 관하여는, 피고들의 집회 시위의 주최행위와 일부 시위자의 일탈 행위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전제인 '참가자 또는 개별 폭력행위와 피고들과의 관련성'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고", "원고(경찰) 제출 증거만으로는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 시위를 주최하고 진행한 행위와 폭력행위 사이, 또는 원고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경찰(국가)의 상고를 기각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판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시기(이명박근혜 시절)에 소신 있게 판결했던 재판부들과 이런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심초사 밤새워가며 애써주신 김남근 변호사와 서선영 변호사 등 17명의 변호인단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대표 사례인 '광우병 촛불'
이번 판결로 사법부는 집회 시위 관련 기본권보장과 관련해 또 다른 경지를 개척하게 됐다. 광우병 촛불 직후 진행되었던 형사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위헌제청을 통해 일률적인 야간집회 금지와 야간시위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을 이끌어 냈고, 또 집회 시위 과정에서 도로에 대한 전면적·배타적 점거의 경우는 일반교통방해죄에 해당되지만 도로를 부분적으로 점거하는 집회·시위는 일반교통방해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또 당시 이른바 "보수적" 법률단체 등이 공개적으로 모집한 인근 상인들 100여 명이 촛불 시민들을 상대로 제기한 23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도 법원에서 정교하고 촘촘한 법리로 청구 기각한 판례도 나왔다. 이제 광우병 촛불 관련하여 해결되지 않은 실정법적 측면의 "외상값"은, 광우병촛불과 관련해 아직도 집행유예 기간에 처해 있는 필자와 주제준 위원장 및 2MB탄핵범국본의 백은종 대표 등의 사면복권 문제만 남은 셈이다.
한편, 2심 판결문에는 소송의 이익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 등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의견을 억압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이른바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ninst Public Participation)'의 부당성이 설시되어 있다. 즉, "집회·시위 주최자가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모인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의 일탈 행위가 있을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폭력 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주최자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한다면, 집회·시위 주최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정치 현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수집단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데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종국적으로 소수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적 의견표명을 통해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이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관련 법리를 설시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소송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서조차 이미 31개 주와 컬럼비아특별구에서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는 법률(Anti-SLAPP법)이 제정되어 있고 그 외에도 캐나다와 호주 등의 나라에서도 전략적 봉쇄소송이 제한되는 입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찰 등 권력기관들이 앞장서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하고 있었다는 점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