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동산 보완대책 추진방향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제1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오른쪽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2020.7.10
권우성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말이 나돈다고 한다. "나는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안 찍었어. 근데 집값을 이렇게 올려주니 미워할 수가 없네." 강남 등지에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부동산 부자가 했을 법한 말이다. 이와는 상반하는 다른 말도 나돈다고 한다. "나는 확고한 문재인 정부 지지자였어. 문재인 대통령 당선되면서 자가(自家)냐 전세냐 고민하다가 전세를 선택했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야. 이번 생은 망했어." 집을 사려다 정부를 믿고 전세를 선택한 30대 직장인이 했을 법한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반대자도 지지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책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정책 당국자의 말로만 판단하면, 이런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2017년 8.2대책 발표 자리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을 거주공간이 아닌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던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은 대책 발표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어떤 경우든 새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 후에도 정책 당국자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이런 유의 언사를 반복했다.
2020년에는 그동안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다.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하면, 새해 기자회견에서는 급등 지역의 부동산값이 "원상회복돼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놓았다. 지난 7월 16일에 행한 국회 개원연설에서는 예전 "부동산을 많이 가진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해주겠다"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을 연상시키듯,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라며 강한 문제 해결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정부 스스로 '초강력 대책'이라 자부하는 7.10대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두고 봐야겠지만, 정부 출범 후 3년 2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정책 당국자의 레토릭과 정책 성과에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지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양치기 소년과 진배없다.
과거에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최소한 6개월이나 1년 동안은 시장이 잠잠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런 일시적 안정화 효과조차 크게 약해졌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즉시 여기저기서 풍선 효과가 발생했고 부동산값은 더욱더 올라갔다.
'투기꾼은 날아다니는데 정부는 기어다닌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금관구(금천구·관악구·구로구),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성·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등의 신조어도 속출했다.
7.10대책이 아파트값 폭등을 잠재울 수 있는 제법 강한 내용을 담았음에도 많은 국민이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표효과를 상실한 정책은 내용이 아무리 강해도 소용이 없다(공표효과란, 정책이 시행되기 전이라도 발표하는 것만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부동산 투기는 거대한 괴물